수출기업들이 선박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운임 부담으로 공장가동을 멈추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 당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해운업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산업계 목소리가 묵살됐고, 그 여파가 코로나 사태를 만나 수출대란으로 돌아왔다. 해운산업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한국 해운산업의 실태를 짚어보고 해운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운임이 오르면 선주가 ‘갑’, 떨어지면 화주가 ‘갑’인 해운시장이 바뀌지 않으면 제2, 제3의 물류대란은 또 일어날 겁니다.”

국내 한 물류업체 고위 관계자는 이른바 ‘수출 대란’의 배경을 이같이 진단했다. 최근 컨테이너선 부족 문제와 운임 급등의 1차적 원인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회복에 따른 물동량 급증이지만, 해운사와 수출기업간 오랜 불신이 일을 더 키웠다는 취지다.

지난 1일 분주한 부산항.

◇ ‘계약 파기, 단가 후려치기’… 저운임 땐 수출업체가 횡포

지난 10년 가까이 해운시장은 화주가 절대 우위에 있었다. 특히 글로벌 1위 선사 머스크의 주도로 시작된 선사간 ‘치킨게임’으로 저가 운임 구조가 굳어졌다.

한진해운의 경영난이 심각했던 2015~2016년이 절정이었다. 당시 운임이 너무 떨어진 탓에 컨테이너 선사들의 수익성은 바닥을 쳤다. 아시아~유럽 노선의 운임이 TEU(20피트 컨테이너)당 1000달러 수준에서 200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특히 운임이 좋을 때 발주했던 컨테이너선들이 인도되면서 남아도는 선복량(적재능력)이 더 늘었다.

수출기업들은 저운임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중소 선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운임 인하를 요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운송 계약 체결된 뒤 빈번하게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당시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이 운임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며 소위 ‘운임 후려치기’도 서슴지 않았다”며 “선사들은 코가 석자이니 울며 겨자먹기로 포워딩 업체들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자금사정이 열악했던 국적선사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한진해운 파산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국내 수출기업들의 외면을 꼽기도 한다. 해운사 고위 관계자는 “위기를 지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우리 기업들에 매달려도 ‘외국적 선사가 싸다’는 이유로 외면했었다”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었던 한진해운 본사 모습.

◇ 해운 운임, 언젠가는 하락… 선·화주 상생 방안 마련돼야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다. 수출기업들이 배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컨테이너선을 구해도 해운 운임이 반년새 3배가량 오르면서 물류비 부담이 커졌다며 불만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선사들은 어려울 때 외면했다고 하지만 당시에 국적 선사 이용비중을 최대한 늘렸다”며 “오히려 상생을 외치던 선사들이 이제와서 표정을 바꿨다”고 말했다.

선사와 화주의 관계가 언제든지 다시 뒤집힐 수 있는 만큼 미래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교수는 “해운 운임은 경제 사이클과 맞물려 등락을 반복하기 때문에, 지금 운임이 올랐다는 것은 언젠가 다시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라며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운임이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선사와 화주들이 장기운송계약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기운송계약은 화주들이 정기 선사에 주기적으로 물량을 제공하고 비교적 저렴한 운임으로 화주들에게 선복을 제공해주는 계약을 말한다.

장기운송계약을 늘리고 때때로 가격이 변하는 스팟(spot·비정기 단기 운송계약) 비중을 줄이면 선주와 화주 모두 운임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운임이 급등해도 화주들은 기존에 약속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선복을 공급받을 수 있고, 반대로 운임이 폭락해도 선사들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유지할 수 있다.

장기운송계약을 하면 전체 수출입 물동량 예측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선사가 계약 물량을 바탕으로 선박과 컨테이너 박스를 미리 준비한다면 지금처럼 화주들이 배를 구하지 못하는 사태도 방지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로스앤젤레스(LA) 항구 전경.

◇ 한국, 장기계약 비중 낮아 운임 변동에 취약

일본은 장기운송계약 비중이 80%에 달한다. 스팟 물량이 적으니 한국보다 수출입 운송 환경이 안정적이다. 해상법 전문가인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우 화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미주 화물의 50%만 장기운송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며 “일본에 비해 운임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영세 화주들이다. 중소형 화주들이 선사들과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선 고정된 물량이 일정 규모 이상 있어야 한다. 일주일에 컨테이너 박스 1개도 수출하지 못하는 소형 화주와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할 선사는 없다. 김 교수에 따르면 소형 화주 95%가 일주일에 1TEU도 수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장

김 교수는 “미국은 소형 화주들이 연합체를 결성해 선사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화주 연합체가 선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제도화가 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해양진흥공사 등에서 소형 화주들과의 장기운송계약 체결한 선사들에게 물량 부족에 대한 보증을 서주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정부도 이같은 내용에 공감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는 일명 ‘선화주 상생형 표준 거래계약서’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상생형 표준거래계약서에는 장기운송계약 비중을 높이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며 “수출입물류 상생협의체 등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