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무기체계 획득 방식이 탑다운(Top-Down·하향식)에서 업체들이 먼저 제안하는 바텀업(Bottom-Up·상향식) 형태로 바뀔 예정이다. 개발부터 전력화까지 5~10년 정도 걸리는 시간을 줄여 최신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서도 제도가 바뀌면 연구개발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1일 군 당국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업체 자율제안형 연구개발 제도’ 신설을 준비하고 있다. 방사청은 특정 무기체계의 전문성을 가진 업체가 군의 소요 검토 단계부터 참여해 무기체계를 제안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 제안 이후 소요가 결정되면 요구 성능과 전력화 시기를 논의한 뒤 업체는 군 상황에 맞게 개발 방안을 제안하고, 군 당국은 이에 따라 무기 획득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지금은 군이 먼저 소요를 제기해야 무기체계 개발이 시작된다. 각 군이 필요한 무기를 요청하면 합동참모본부가 도입 여부를 판단해 방사청에 구매를 요청한다. 방사청은 사업추진전략을 통해 구매 여부를 결정하고, 예산을 편성한 뒤 사업 공고를 낸다. 사업 공고가 나와야 업체들은 군이 원하는 성능을 알 수 있는데, 군이 모든 소요를 정한 뒤여서 업체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업체 자율제안형 연구개발 제도가 시행되면 각 군이 필요한 무기체계를 검토할 때부터 업체가 참여하게 된다. 방사청 관계자는 “(업체가) 군의 요구사항을 빠르게 인지하고 선행 개발에 나서는 등 사업 추진을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군의 요구 성능에만 맞춰 개발하는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체들 입장에서는 선행 연구비가 줄어드는 장점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업체들은 군에 어떤 무기가 필요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연구개발에 나서야 했다. 연구개발은 수년에 걸쳐 수십억원이 들지만, 입찰에 성공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개발에 나서는 부담이 있었다. A사 관계자는 “지금은 군이 요구하는 기술이 있어야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 기업들은 연구개발비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적기에 신기술을 확보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무인기나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등 첨단기술 분야에선 군이 소요를 제기한 뒤 개발이 이뤄지면 기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었다. B사 관계자는 “개발부터 전력화까지 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방사청은 지난 18일 업체 자율제안형 연구개발 제도 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참석한 업체들은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입찰 공정성의 훼손 우려가 없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방사청은 어떤 무기체계부터 적용할지 등 논의를 거쳐 제도를 완성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