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發) 증설과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국내 일부 기업이 영위하는 합성고무 사업이 꾸준한 흑자를 내며 실적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합성고무는 고객사 요청에 맞춰 원료를 적절히 배합해 특정한 물성을 갖도록 만드는 기술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오랜 업력에서 비롯한 고객사와의 협력 관계가 중요해 후발 주자가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시장으로 꼽힌다.

24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011780)화학은 지난해 매출 7조1550억원, 영업이익 272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3.2%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24% 줄어든 수치다. 다만 합성고무 부문 실적은 매출 2조7952억원, 영업이익 1008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29.3%, 4.1% 늘었다.

금호석유화학의 라텍스 제품으로 만들어진 의료용 장갑. / 금호석유화학 제공

금호석화는 병원과 연구소, 자동차, 전자제품, 생활용품(주방용·위생 장갑) 등에 쓰이는 합성고무 NB라텍스(NBL)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약 25%)를 기록 중이다. 회사는 지난해 NBL 생산 라인을 증설하면서 연간 최대 생산량을 기존 71만톤(t)에서 94만6000t으로 확대했다.

금호석화의 NBL은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우호적인 업황이 펼쳐지고 있다. 금호석화는 생산하는 NBL의 80~90%를 세계 최대 장갑 제조업체인 톱글러브(Top Glove) 등이 위치한 말레이시아에 수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부터 중국산 의료용 장갑 등에 50%의 관세를 부과했고, 내년 관세율을 100%로 인상할 계획이다. 중국산 장갑이 미국 내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면 말레이시아 등에서 생산되는 장갑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전기차용 고기능성 타이어 합성고무 제품인 스티렌부타디엔고무(SSBR)도 금호석화의 주력 제품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 SSBR은 기존 고무 제품보다 마모에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내연기관차보다 약 30% 더 무거운 전기차용으로 적합하다. 회사는 지난 2022년 SSBR 생산능력을 총 12만3000t으로 기존 대비 2배가량 확대했다. 올해도 4분기 중 3만5000t의 추가 증설을 통해 15만8000t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카리플렉스가 생산한 소재로 만들어진 수술용 장갑. / DL케미칼 제공

DL케미칼의 합성고무 자회사 카리플렉스(Cariflex) 역시 매년 20% 전후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카리플렉스는 DL케미칼이 지난 2020년 6200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미국 기업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음이온 촉매 기반 합성고무와 라텍스 등을 만들고 있다. 특히 수술용 장갑을 만드는 데 쓰이는 폴리이소프렌 합성고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카리플렉스는 DL케미칼이 인수한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매출 1조2665억원, 영업이익 2474억원을 기록했다. 5년간 누적 영업이익률은 19.5%에 달하는데, 이는 석유화학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높은 수준이다. 카리플렉스의 제품은 경쟁사 제품보다 불순물이 적고 투명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합성고무 시장은 고객사가 요구하는 레시피(recipe)에 걸맞게 원료를 배합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장기간의 업력에서 비롯한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에 범용 석유화학 소재와 달리 후발 주자가 쉽게 진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