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한화에어로)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하자, 일부 주주들이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달 한화에어로가 한화오션(042660) 지분을 사들이면서 자본 조달이 필요없다고 했는데, 한 달 만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는 전날 역대 최대인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한화에어로는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을 해외방산 1조6000억원, 국내방산 9000억원, 해외조선 8000억원, 무인기용 엔진 3000억원 등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는 지난달 9일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 등 그룹사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약 1조3000억원에 취득하겠다고 공시했다. 한상윤 한화에어로 IR담당 전무는 다음날인 10일 한화오션 지분 매입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묻는 말에 “자본 조달 없이 현금 보유분과 영업활동 현금흐름으로 충분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한화에어로는 이번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한화오션 지분 인수에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화오션 지분 인수로 현금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유상증자 규모가 커졌다는 게 주주들의 주장이다. 한화에어로는 “현금 보유분과 현금흐름이 충분하다”고 말한 지 일주일 뒤인 지난달 19일 유상증자 공동대표 주관사 NH투자증권(005940), 한국투자증권과 기업 실사 절차에 돌입했다.
한화에어로가 한화오션 지분을 사들인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부회장, 김동원 사장, 김동선 부사장이 지분 100%를 가진 사실상 가족 회사다. 한화임팩트의 주주는 한화에너지(52.1%)와 한화솔루션(009830)(47.9%)이다.
이 때문에 한화에어로가 작년 연간 영업활동 현금흐름(약 1조4000억원)과 맞먹는 돈(1조3000억원)을 총수 일가가 가진 한화오션 지분을 사는데 쓰고, 사업 투자를 위해 주주에게 손을 벌리는 모양새가 됐다. 한화에어로스 관계자는 “한화오션 지분 인수 때문에 이번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해외 거점 확보 등을 위한 공격적 투자를 늘리기 위해 자금 조달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한화에어로가 해외 거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는 공감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재무장으로 방산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당분간 국내 시장에선 대규모 무기 체계 사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유상증자 규모를 두고서는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한화에어로는 유상증자로 조달한 3조6000억원을 2028년까지 4년에 걸쳐 집행할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의 영업이익이 연간 2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체 자금으로 투자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서재호 DB금융투자(016610) 연구원은 “한화에어로가 앞으로 2년간 약 5조원의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를 낼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럼에도 유상증자를 단행했다는 점에서 주주들의 우려가 커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안유동 교보증권(030610) 연구원은 “ 3~4년에 걸쳐 집행될 필요 자금을 굳이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점에서 아쉬운 결정”이라고 했다. 이지호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연간 영업이익이 2조원을 웃도는 한화에어로의 이익만으로 투자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