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이 최근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실적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 강등 통보까지 받았다. 해외 시장에서 채권 발행이 어려워진 데다, 국내 신평사의 신용등급마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커져 재무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무디스는 지난 15일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등급인 ‘Baa3’에서 투자부적격등급인 ‘Ba1’으로 내렸다. 손실 위험이 높아 투자를 해서는 안 되는 회사라고 평가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온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 전경 / SK온 제공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1월 SK E&S와 합병했다. SK E&S는 합병 이후 사명을 SK이노베이션 E&S로 변경해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사내 독립 기업(Company In Company·CIC)로 운영되고 있다. 두 회사의 합병 당시 금융 시장에서는 재무 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전기차 배터리 자회사인 SK온 등의 실적 부진이 지속되면서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무디스는 SK이노베이션의 대규모 부채와 자회사의 재무 구조 악화를 이유로 꼽았다. 화학 부문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의 신용등급도 Baa3에서 Ba1으로 강등됐다. SK온의 미국 법인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의 채권 등급도 Baa3에서 Ba1으로 하향 조정됐다.

SK이노베이션의 부채 규모는 지난 2021년 29조9242억원에서 지난해 말 70조8812억원으로 3년 만에 137% 급증했다. 단기차입금은 2023년 8조1849억원에서 지난해 12조512억원으로, 사채·장기차입금은 17조7147억원에서 27조322억원으로 각각 증가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은 SK온의 증설과 투자에 따른 일시적 영향으로 올해는 재무 구조가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며 “국내 신평사들의 신용등급은 유지되고 있어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장기 재무 부담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디스가 투자부적격 수준으로 신용 등급을 강등하면서 외화채권 발행이 어렵게 돼 국내 자금 조달 의존도가 커지게 됐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은 국내 신평사의 등급 평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평사는 현재 SK이노베이션의 무보증 사채를 ‘AA, 안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3대 신평사는 모두 2020년에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강등한 후 지금껏 조정을 하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의 재무 건전성 지표는 지난해 크게 악화돼 국내 신평사의 등급 강등 요건에도 부합한 상황이다. 한신평은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의 비율이 7배를 초과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등급을 하향 조정한다. 이 지표는 기업의 수익성 대비 자금 상태를 나타내며, 수치가 높을수록 기업의 채무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기평은 이 비율이 4배를 초과할 경우 등급을 강등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발표한 IR 자료를 통해 지난해 순차입금이 28조5266억원, EBITDA는 2조7640억원이었다고 밝혔다. 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이 10.3배에 이른 것이다. 지난 2023년 SK이노베이션의 순차입금은 15조5665억원, EBITDA는 4조1360억원으로 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이 3.8배 수준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전기차 사업 등의 업황 악화로 이익은 줄어든 반면 시설 투자와 이자 비용이 급증하면서 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자회사인 SK온의 실적도 짧은 기간에 반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출범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기차에 대한 지원과 혜택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혀 배터리 시장의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SK온은 에코프로(086520)와 손잡고 캐나다에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산(産)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최근 5년 간 SK이노베이션의 등급을 유지해 왔던 국내 신평사들 역시 더 이상 조정을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단기간에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으면 국내에서의 자금 조달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