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제조업 기술을 기반으로 유럽의 강자로 군림하던 독일이 최근 몇 년 새 높은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인공지능(AI) 패권을 노리는 미국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에너지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첨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에너지가 국운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독일과 미국의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편집자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20일(현지 시각)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national energy emergency)를 선언했다. 현재 미국이 비상사태를 발동해야 할 정도로 전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본 것이다.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발동하면 행정부는 긴급한 에너지 정책에 대해 의회를 거치지 않고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 연방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려면 의회의 예산 관련 법안 처리가 필수적인데, 이 과정을 건너뛰는 것이다. 국가 비상사태는 주로 전쟁, 자연재해 등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발동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전력이 부족하다고 인식한 배경에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패권 다툼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취임 전날 “우리는 지금의 두 배, 그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비상 권한을 사용해 대형 공장과 AI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오픈AI의 생성형 AI 서비스 챗GPT와 같은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려면 방대한 연산이 필요해 전력이 많이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구글 검색 1회에 0.3Wh(와트시)의 전력이 소비되고, 챗GPT로 1회 검색하면 2.9Wh의 전력이 소모된다고 발표했다. 데이터센터에 가장 많이 보급된 4세대 서버의 하루 전력 사용량은 전기차 18대를 충전하는 양과 비슷하다.

미국의 투자은행 웰스파고(Wells Fargo)는 생성형 AI로 인한 미국의 전력 수요가 2023년 3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652TWh까지 217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가 집계한 2023년 기준 미국의 전력 소비량은 4000TWh 정도다.

사용자 검색 방식에 따른 전력소비량 비교/미국전력연구원, 삼일PwC경영연구원 제공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이기려면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미국 정부에 꾸준히 건의해 왔다. 오픈AI,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4년간 AI 관련 인프라(기반시설)에 최대 5000억달러(약 727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는 최대 20개의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계획이 있는데, 데이터센터당 필요한 전력 규모는 5기가와트(GW) 정도로 추산된다. 통상 원자력 발전소 1기의 용량이 1GW인데, 100개의 새 원전이 필요한 셈이다. 이 때문에 아마존, 구글, 메타 등 미국의 대형 IT 기업들은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지금의 세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2030년 미국의 AI 전력 수요가 652TWh까지 늘어난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연간 전력 수요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력 수요를 따라가기 어렵다 보니 미국 정부가 비상사태를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도 AI 시대에 대비해 전력 공급 능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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