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이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으로 부상하는 인도 시장 공략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인도를 비롯한 남반구 개발도상국(글로벌 사우스)이 리스크(위험 요인)를 분산할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받고 있다.

구광모 LG(003550)그룹 회장은 지난달 24일부터 인도에 나흘간 머물면서 현지 R&D(연구·개발) 센터, 생산 공장, 제품 판매 현장 등을 둘러봤다. 구 회장은 올해 첫 해외 출장지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아닌 인도를 택했는데, 그가 인도를 방문한 건 2018년 회장 취임 이후 처음이다.

구광모(왼쪽 세 번째) LG그룹 회장이 지난달 25일 인도 뉴델리에 위치한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을 찾아 에어컨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LG 제공

최근 1년 새 재계 총수들은 연이어 인도를 찾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은 지난해 7월 뭄바이 법인을 방문했고,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은 4월, 10월 두 번 인도를 찾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인도에서 올해 첫 해외 현장 경영에 나섰다. 신 회장이 인도 출장길에 오른 건 약 9년 만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미·중 무역갈등의 여파 속에 인도는 중국을 대체할 유망 시장으로 꼽힌다. 인도는 14억명이 넘는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자, 경제활동인구(15~64세)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는 소비 대국이다. 전체 인구의 68%가 경제활동인구다.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한 정부 의지도 강하다.

정부는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 방안 중 하나로 글로벌 사우스로의 수출 시장 다변화를 제시하며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도 관세를 놓고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무역 마찰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0월 22일(현지 시각) 인도 뭄바이 인도증권거래소(NSE)에서 인도법인의 현지 증시 상장 기념식을 개최했다. (왼쪽부터)장재훈 현대차 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아쉬쉬 차우한 인도증권거래소(NSE) 최고운영자(CEO) 등이 타종을 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미국 관세 정책의 사정권에 든 현대차는 인도를 신흥 시장 사업 확장을 위한 전략적 수출 허브로 육성하고 있다. 현대차 인도법인(HMIL)은 지난해 10월 인도 주식시장 역대 최대 규모로 기업공개(IPO)에 나섰다. 조달한 자금으로 전기차 생산 현지화, 신차, 미래차 기술 연구개발(R&D) 역량 등에 투자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LG전자(066570)는 인도법인 상장을 준비하고 있고, 다른 계열사도 인도 시장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상장을 위한 투자설명회를 시작했고, IPO를 통해 약 10~15억달러(약 1조4524억원~2조1786억원)를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CJ대한통운(000120)도 지난 2023년부터 인도 법인 CJ다슬의 IPO를 추진해오고 있다.

가전·자동차·유통뿐 아니라 철강 산업의 인도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해 인도 1위 철강기업 JSW그룹과 손잡고 현지 일관제철소 설립을 비롯해 배터리 소재,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사들도 인도 정부 주도로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의 인도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경제단체도 양국 간 접점을 늘리고 현지 투자, 수출 지원을 늘리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인도 최대 경제단체인 인도산업협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협회 내 인도위원회 신설을 추진 중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인도, 아세안 등 수출 유망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무역 사절단을 파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