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 업계가 미국의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및 수출량 제한(쿼터제) 폐지 조치 대응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동안 한국 철강 제품은 일정 물량만 관세 없이 미국에 수출할 수 있었는데, 25%의 관세가 붙는 대신 쿼터제는 사라졌다. 국내 철강업계는 관세 적용으로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쿼터제 폐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2일 철강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이날 오전 0시 1분(현지 시각),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1시 1분을 기준으로 수입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 25% 부과 조치를 발효한다. 미국 국제통일상품 분류체계(HS코드) 기준 볼트·너트·스프링 등 철강 상품 155종과 알루미늄 상품 11종이 대상이다. 자동차·가전·항공기 부품 등 87개 파생 품목에 대해서는 공고시까지 관세 적용이 유예됐다. 이들 제품도 철강·알루미늄 함량 가치에 따라 추후 관세가 부과된다.
한국은 유럽연합(EU) 다음으로 많은 철강·알루미늄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어 관세 발효에 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철강협회 등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미국으로 모두 277만톤(t)의 철강재를 수출했다. 금액으로는 35억달러(약 5조775억원)로 전체 수출량에서 13.1%를 차지한다. 한국 철강재가 미국 수입 철강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9.7%로 캐나다·브라질·멕시코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관세 조치로 국내 철강 업계의 대(對)미 수출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라면서 “미국시장에서 점유율을 지키려고 가격 인상을 제한하면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철강업체가 수입산에 관세가 부과될 것을 반영해 제품 가격을 올렸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원자재 분석 기관 CRU에 따르면 미국 내 열연강판 유통 가격은 지난 5일 기준 1t당 999달러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22일 750달러에서 33.2%나 올랐다. 국내 열연강판의 유통 가격은 지난 7일 기준 1t당 810달러로 미국 유통가보다 19%가량 낮다. 국내 유통 가격에 관세율을 단순 적용하면 미국 유통 가격보다 약 1% 비싼 수준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수요가 많은 철강재는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필요한 특수강이나 자동차용 강판 등이다. 현대차(005380)그룹 등 주요 자동차 업체는 미국 내 차량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정은미 한국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미국 내 철강재 유통 가격은 국내보다 높게 형성돼 있으나 쿼터제로 수출 물량이 제한돼 있었다. 국내 철강 업계는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건설 자재 품목 등은 피해가 있겠지만, 품질 경쟁력을 갖고 있는 자동차용강판·니켈도금강판·에너지용 강관 등의 품목은 긍정적인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 업체들은 품목별 수출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쿼터 제한이 없어졌기 때문에 미국의 시장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품목별로 수출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라며 “정부와도 긴밀하게 협의해서 민첩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