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내년 1월부터 EU 회원국 공항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기에 지속가능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를 최소 2% 의무 혼합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로 하면서 항공권 가격이 오를 전망이다. 유럽 노선을 운항 중인 한국 항공사는 당장 항공 운임을 올리지 않을 방침이지만, SAF 의무 비율이 늘면 가격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SAF는 폐식용유, 폐플라스틱, 대기에서 포집된 탄소 등을 활용해 생산하는 친환경 연료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존 항공유와 화학적으로 유사해 항공기 구조를 변경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다. SAF는 기존 항공유보다 탄소 배출량을 80%가량 줄일 수 있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필수 연료로 꼽힌다. SAF의 단점은 가격이 일반 항공유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자료에 따르면 2022년 SAF 평균 가격은 톤(t)당 2437달러로, 기존 항공유 가격(1094달러)보다 2.5배 정도 높았다.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EU는 내년 1월 1일부터 27개 회원국 공항에서 이륙하는 항공기에 SAF를 최소 2% 포함하도록 의무화한다. SAF 혼합 비율은 2030년 6%, 2035년 20%로 높아지고 2050년엔 최종 70%에 달하게 된다. 지금은 EU 국가마다 SAF 혼합률이 다르다. 0%인 나라도 있고 프랑스는 1%를 혼합하도록 한다.
독일 루프트한자는 EU 규제에 맞춰 내년 1월 1일부터 EU 회원국과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에 최대 72유로(약 10만6000원)의 추가 요금을 부과한다. 추가 요금은 노선과 운항 거리, 좌석 등급에 따라 1유로~72유로 사이에서 차등 적용된다.
에어프랑스-KLM그룹은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에 SAF 비용을 반영하고 있다. 에어프랑스는 모든 EU 출발 항공편에 대해서도 항공권 가격에 SAF 비용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에어프랑스-KLM그룹은 2022년과 2023년에 전 세계 SAF 생산량의 각 17%, 16%를 사용했다.
유럽 노선을 운항 중인 한국 항공사도 다음 달부터 항공유에서 SAF가 차지하는 비중을 2%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대한항공(003490)은 프랑스 파리와 인천을 오가는 여객 노선에 수입 SAF를 사용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유럽발 인천행 12개 노선(영국 런던 제외) 전체에 SAF 2% 혼합 의무가 적용된다. 대한항공은 SAF 도입이 확대되지만 당장은 항공권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SAF 가격이 일반 항공유보다 비싸긴 하지만 혼합 비율이 1~2%대로 낮아 현재로서는 항공권 운임 인상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티웨이항공(091810)은 현재 파리발 노선에 의무 시행 중인 SAF 혼합 사용을 다음 달부터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노선으로 확대한다. 티웨이항공은 국내 LCC(저비용항공사) 중 처음으로 장거리 노선에서 SAF를 사용하고 있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SAF 혼합 비율이 아주 높지는 않아 항공권 가격에 반영할지는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7년부터 국내 출발 국제선의 모든 항공편에 SAF 혼합(1% 내외) 급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SAF 생산 비용이 급격히 싸지지 않으면 항공권 가격에 SAF 비용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며 “전반적으로 친환경 기조가 강한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 친환경 연료 사용으로 항공 요금을 올린다고 하면 소비자 저항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