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전북 군산지방산업단지에 위치한 SGC에너지(005090) 열병합 발전소. 강한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눈발 사이로 아파트 18층 높이의 CCU(이산화탄소 포집·활용) 설비가 보였다.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에서 탄소를 포집하고 증기로 가열해 회수하는 흡수·재생탑이다. 설비 너머 발전소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왕경훈 SGC에너지 효율팀 부장은 “현재는 사업 초기라 발전소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의 10분의 1 정도를 활용 중”이라며 “배기가스 내 탄소는 90% 이상을 포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SGC에너지는 이달 초 민간 발전사 최초로 CCU 설비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CCU 설비를 통한 탄소 감축량은 하루 최대 300톤(t), 연간 기준 10만t이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로 승용차 5만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CCU는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탄소를 대기로 배출하기 전에 분리해 포집하는 기술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목표가 구체화하기 시작하면서 석유화학 기업을 중심으로 CCU 사업이 활발해졌다.
왕 부장은 “발전업계도 친환경 연료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화석연료 사용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다”며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한 산업 특성을 고려할 때 회사의 CCU 투자는 선제 대응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SGC에너지가 군산에서 운영 중인 열병합발전소는 총 4기다. 이 가운데 3·4기는 목재 팰릿을 비롯한 바이오매스 연료를 적용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지만, 1·2기는 비용 문제 등으로 아직 유연탄을 쓰고 있다.
SGC에너지는 지난 2021년 CCU 사업 투자를 결정하고 민간 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전력(015760)공사와 CCU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한전 외에도 CCU 기술을 보유한 국내외 연구기관은 많지만, SGC에너지는 한전의 기술이 사업화하기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한전의 CCU 기술은 습식 방식으로 배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90% 이상 분리해 포집하고, 설비운전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렇게 포집한 탄소는 흡수·재생탑에서 약 200~300m 떨어진 액화설비로 보내 액화탄산으로 생산된다. 액화탄산은 산업용으로 많이 쓰이는데 용접용, 원예용, 드라이아이스 등의 수요가 늘고 있다. 당초 계획은 드라이아이스 생산용이었지만, 설비 운영이 안정되면 정제설비를 추가해 반도체급 초고순도 액화탄산을 공급할 예정이다. 액화탄산은 반도체 웨이퍼(원판)를 깎으면서 생기는 찌꺼기를 씻는 세정공정에 쓰인다.
발전사가 액화탄산을 공급하면 시장 수급 안정에도 기여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SGC에너지는 집단에너지사업자로 열병합발전을 통해 증기와 전기를 동시에 생산하고 있다. 증기는 인근 산업단지에 365일 24시간 공급하는 만큼, 1년 내내 액화탄산을 멈추지 않고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액화탄산을 주로 공급하던 석유화학업체들은 주기적으로 1~2개월간 연차정비에 들어가야 한다. 석유화학공장이 보수로 멈추면 2~3년에 한 번씩 탄산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SGC에너지가 CCU 사업을 개시한 후에 주문이 쏟아져 설비가 완공되기도 전에 10년 치 액화탄산 공급 계약을 마쳤다. 매년 가격을 갱신하도록 협의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매출 규모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최근 액화탄산 시세가 t당 3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10만t 판매 시 300억원 규모다. 지난해 5월 CCU 설비 구축을 위해 투자한 금액은 570억원이다.
처음 CCU 사업을 고려할 때 액화탄산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발전사가 얻는 이익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액화탄산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산업단지 가동률이 하락하면서 공급은 감소한 반면, 비대면 신선식품 배송 증가 등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SGC에너지 관계자는 “액화탄산 판매 이익에 더해 탄소 재활용에 따른 탄소배출권도 확보하게 된다”며 “앞으로 다양한 기술, 경제성을 검토하겠지만 단순히 수익성만 보고 진행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CCU 사업으로 그치지 않고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확대할 계획”이라며 “폐배터리 재활용, 청정메탄올, 수소연료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늘려 탄소중립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