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스크랩(고철)이 철강업계의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핵심 자원으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이 관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철스크랩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순환자원으로 지정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2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은 약 200억원을 들여 2025년까지 전국에 고품질 철스크랩 수집기지를 설립하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4곳을 세웠고, 올해 하반기에 4곳 더 늘린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수집기지를 통해 모은 연간 50만톤(t)의 철스크랩을 모두 포스코에 공급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자체적으로 해외 철스크랩 공급사에 지분 투자 방식으로 철스크랩 조달 규모를 연간 400만t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제철(004020)도 국내 철스크랩 공급사를 신규 발굴하고, 해외 공급업체와 장기계약을 활성화해 안정적인 철스크랩 물량을 확보하기로 했다. 동국제강그룹(동국홀딩스(001230)) 역시 해외 철스크랩 수집기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철스크랩은 ‘쇠 부스러기’를 뜻한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에 쓰인 뒤 폐기 처리한 노폐 철스크랩이 국내 철스크랩의 70%가량을 차지한다. 이밖에 제철소에서 제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자투리로 나오는 자가발생 철스크랩, 자동차·가전 공장 등에서 가공하고 남는 가공 철스크랩 등이 있다.
철스크랩이 주목받는 이유는 탄소 감축 때문이다. 보통 철강재 1t을 만들 때 발생하는 탄소가 전기로는 0.5t, 고로(용광로)는 2.2t이다. 철광석과 원료탄을 투입하는 고로보다 철스크랩을 사용하는 전기로가 탄소 배출량이 4분의 1 이상 적다.
철강기업들이 탄소 감축 전략의 하나로 전기로를 늘리기로 하면서 철스크랩 수급이 중요해졌다. 포스코는 약 6000억원을 투자해 전남 광양제철소에 연간 25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전기로 1기를 짓기로 했다. 2024년 착공해 2026년 완공하는 것이 목표다. 2027년 경북 포항제철소에도 전기로 1기를 추가로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제철도 가동을 멈췄던 충남 당진제철소 박판(두께 3㎜ 미만의 얇은 철판)용 전기로를 1500억원을 투자해 다시 운영하기로 했다.
고로 조업에도 철스크랩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모두 고로에서 만든 쇳물(용선)과 전기로에서 생산한 쇳물(용강)을 섞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철스크랩은 불순물이 많아 자동차 강판과 같은 고급강을 만들기 어려웠으나 이 공법을 활용하면 고급강도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선 연간 2700만t 안팎의 철스크랩이 소비된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철스크랩만으로는 부족해 매년 400만t 이상의 철스크랩을 수입하고 있다. 앞으로 철스크랩 수요가 증가하는 것에 맞춰 수입 규모도 늘어야 하지만, 주요 국가가 장벽을 높이고 있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은 철스크랩에 수출 관세 40%를 부과하고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전기로 비중을 40%로 확대할 계획이어서, 전 세계 철스크랩을 빨아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도 주기적으로 철스크랩에 수출 관세를 매긴다. 유럽연합(EU)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아닌 나라에 철과 금속 스크랩 수출을 제한하는 ‘폐기물 선적 규정(WSR) 개정안’을 지난 1월 채택했다.
철스크랩 공급망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올해 ‘저탄소 철강생산 전환을 위한 철강산업 발전전략’의 첫번째로 철스크랩 산업생태계 구축을 제시했다. 철스크랩을 순환자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철스크랩은 폐기물관리법상 폐기물로 지정돼 보관, 수집, 운반, 처리에 한계가 있었다. 폐기물 규제를 피하려면 개별 기업이 유해성과 경제성 조건 등 순환자원 조건을 충족했다는 인정을 받아야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1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폐기물의 순환이용 등 순환경제는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수단이자 새로운 성장모델로 주목받고 있다”며 “철스크랩 등 경제성 있는 폐자원에 대해 개별기업의 신청 없이 폐기물 규제가 면제되는 순환자원으로 일괄 지정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