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을 산업으로 2차전지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중국 제외)에서 국내 2차전지 빅3 업체의 점유율은 53%로 절반을 넘었다. K배터리의 위상은 배터리셀을 넘어 소재와 장비 등 2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기차 생산이 5400만대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차전지를 놓고 ‘배터리 패권경쟁’을 펼치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국내 2차전지 업계가 전 세계에 수십 개의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가운데, ‘원자재·소재 → 배터리셀 → 완성차 → 폐배터리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동맹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 가장 활발히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은 배터리셀과 완성차 업계다.
두 업계는 안정적인 배터리 납품·조달처 확보와 시설 투자비 분산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주요 시장인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합작법인·생산기지 건설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최근 현대차(005380)와 함께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셀 합작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두 회사가 절반씩 총 5조7000억원을 투자해 2025년말 생산을 시작한다. 생산규모는 연간 약 30기가와트시(GWh)로 전기차 약 30만대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이다.
합작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셀은 현대모비스(012330)가 배터리팩으로 제작해 현대차에 공급한다. 이 배터리는 전기차 전용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비롯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000270) 조지아 공장 등에 전량 공급될 예정이다.
◇ “북미 잡아라”… 베터리셀·완성차, 합종연횡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 가운데 완성차 업체와 가장 많은 협력 체계를 갖춘 곳은 LG에너지솔루션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2020년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50%씩 지분을 출자해 배터리를 생산하는 ‘얼티엄셀즈’를 만들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오하이오주에 연산(年産·1년간 생산하는 양) 45GWh급 배터리 공장을 운영 중이며, 테네시 공장도 올해 가동할 예정이다. 2025년 양산 예정인 미시간 공장도 건설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일본차와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혼다차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미국 오하이오주에 연산 40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025년 가동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스텔란티스와도 캐나다에 연산 45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공장은 캐나다 정부와의 보조금 협의가 지연되면서 공사가 일부 중단된 상태다.
SK온은 빠르게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SK온과 포드는 2021년 5월 총 10조2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총 연산 129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기지 3개를 구축하기로 했다. 테네시와 켄터키1공장은 2025년, 켄터키2공장은 2026년 완공 예정이다.
또 SK온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과 함께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카운티에 연산 35GWh의 배터리셀을 생산할 수 있는 합작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는 전기차 약 30만대분이다. 현대차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각각 합작 공장을 건설하면서 연간 전기차 6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배터리셀 물량을 확보하게 됐다.
북미 시장 진출이 가장 느렸던 삼성SDI(006400)는 스텔란티스와 2025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인디애나주에 연산 23GWh의 배터리셀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또 삼성SDI는 최근 GM과 협력해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 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약 30억달러(약 4조원) 이상을 투자해 연산 30GWh 이상의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 배터리셀, 원자재·소재 업체 ‘러브콜’
배터리와 완성차 업계뿐만 아니라 전구체, 양극재 등 소재 업계 간의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늘어나는 배터리셀 공장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핵심 소재인 니켈, 코발트, 리튬, 망간 등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 리튬이온 배터리의 주요 소재인 양극, 음극, 전해액, 분리막 등 각 소재의 공급처 확보도 필요하다.
전구체는 니켈·코발트·망간 등을 혼합해 만든다. 전구체에 리튬과 접착제를 섞고 열처리, 코팅물질 믹싱 등 과정을 거치면 배터리의 성능을 결정하는 양극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전구체·양극재를 생산하는 기업은 LG화학(051910), 엘앤에프(066970), 에코프로비엠(247540), 포스코퓨처엠(003670), 코스모신소재(005070) 등이다. 엘앤에프는 최근 미국 테슬라와 하이니켈 양극재(니켈 비중이 높은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현대차 합작 공장에 양극재 공급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코프로는 SK온, 중국 GEM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군산시 새만금 부지에 5만톤(t) 규모의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LG화학도 중국 화유코발트와 협력해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짓는다. 2026년까지 1차로 5만t 양산 체제를 갖춘 뒤, 증설을 통해 연간 10만t 규모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퓨처엠(003670)은 GM과 함께 캐나다에 합작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지난해 두 회사는 북미 양극재 합작사인 ‘얼티엄캠’ 설립을 위한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1단계로 전기차 약 22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연산 3만t 규모의 하이니켈 양극재 합작공장을 퀘벡주 베캉쿠아(Becancour)에 건립하기로 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올해부터 2029년까지 7년간 LG에너지솔루션과 30조2595억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연평균 공급 금액은 약 4조3000억원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1월에는 삼성SDI와 10년간 40조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GM에 2030년까지 양극재 95만t 이상을 공급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는 고성능 순수 전기차 약 500만대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에코프로비엠은 삼성SDI와 합작 설립한 에코프로이엠을 통해 세계 최대 규모 양극재 공장 CAM7을 건설하고 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양극재는 삼성SDI 배터리 생산에 사용된다.
향후 시장이 급격히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에서도 협력 체계가 구축되고 있다. LG화학은 고려아연(010130) 계열사 켐코와 함께 합작사인 한국전구체를 설립했다. 이 공장에서는 기존 메탈 전구체를 비롯해, 폐기물인 스크랩(Scrap)과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리사이클 메탈도 함께 활용해 전구체를 생산한다.
엘앤에프는 두산에너빌리티와 지난해 배터리 소재 리사이클링 사업을 위한 상호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태동하는 시기인 만큼 생태계 피라미드의 제일 하단인 원자재와 소재부터 전기차, 폐배터리까지 공급망이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라며 “자동차의 안전성 유지와 공장의 생산 효율성 등을 감안했을 때 한번 협력 관계가 구축되면 장기적인 파트너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 태동기에 좋은 동맹군을 얼마나 더 많이 끌어모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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