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이 상장 전 투자 유치(프리IPO) 지연으로 금융권 단기 차입금을 급속도로 늘리고 있다. 글로벌 생산 기지 확대와 공장 가동 초기 비용 증가 등으로 흑자 전환이 계속 미뤄지면서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최근 금융사 단기차입금 한도를 기존 1조8700억원에서 3조4697억원으로 1조5997억원 늘렸다. SK온은 유동성 확보 목적으로 차입금 한도를 늘렸다며 향후 자금 소요에 따라 순차적으로 차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단기차입금은 기업이 1년 이내에 갚아야 할 자금을 의미한다.
이번 단기차입금 한도 증가로 SK온의 자기자본대비 단기차입금 비중은 38.82%까지 올랐다. 금리가 높고 만기가 짧은 단기차입금이 늘면 기업의 재무건전성은 악화된다.
SK온이 단기차입급 한도를 2배 가량 올린 것은 프리IPO 지연으로 투자금 확보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SK온은 JP모건과 도이치뱅크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프리IPO에 나섰다. SK온은 프리IPO를 통해 4조원가량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지난 2월 진행된 예비입찰에는 칼라일그룹과 텍사스퍼시픽(TPG)그룹,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 글로벌 대형 펀드들이 참여했다. SK온은 상반기 중 프리IPO를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예비 투자자들이 SK온의 투자 조건에 난색을 표하며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SK온은 올해 미국, 중국, 유럽 등 생산 기지 확대에 4조원을 투자할 계획인데, 프리IPO가 미뤄지면서 결국 단기차입금으로 투자금을 융통하는 것이다.
SK온은 투자금 마련을 위해 금융권 차입금을 계속 늘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대출채권을 이용해 증권사로부터 7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SK온이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에도 증권사를 대상으로 1조원 규모의 단기 차입금(브리지론)을 조달했다.
SK온의 차입금이 급증하면서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의 순차입금도 지난해 말 8조4129억원에서 올해 3월 말 10조3975억원으로 늘었다. SK이노베이션은 그동안 재무건전성을 위해 순차입금 규모를 10조원 이내로 유지하겠다고 했었다. SK온의 차입급 증가로 SK이노베이션이 제시한 순차입급 마지노선인 10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2분기에도 SK온의 차입급이 급증하면서 SK이노베이션의 순차입급은 1분기보다 늘어났을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에서는 SK온의 프리IPO 지연 이유를 두고 투자 조건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을 꼽는다. SK온은 당초 기업가치를 40조원으로 책정하고 지분 10%에 대한 프리IPO를 진행하면서 예비 투자자들에게 4조원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예비 투자자들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세계 공급망 불안정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SK온의 실적을 가늠할 수 없다며 기업가치가 과대 계상됐다는 입장이다. 이후 SK온은 기업가치를 30조~35조원 수준으로 낮춰 제시했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관망세다.
보통주 유상증자 형태의 투자 방식도 SK온에 유리한 구조라고 평가된다. 일부 예비 투자자들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 다양한 투자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환전환우선주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시점에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투자금을 상환 받을 수 있다. 조건만 충족하면 투자자들이 언제든지 투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이 아닌 부채로 인식된다.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라 보통주보다 배당률이 높다. 통상 재무적투자자(FI)는 보통주보다는 원금 회수와 수익 확보에 유리한 상환전환우선주 투자를 선호한다.
최근 예비 투자자와 SK온은 프리IPO에 대한 세부 조건을 다시 조율하기 시작했다. 당초 예상보다 프리IPO 마무리 시점이 늦어지면서 SK온이 유용 가능한 자금을 최대한 활용해 투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SK온은 올해 4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024년 양산을 목표로 지난달부터 중국 옌청에서 30GWh 규모의 배터리 4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헝가리 코마롬에는 2020년 7.5GWh 규모의 1공장을 건설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내 10GWh 규모의 2공장 가동에 들어간다. 지난달부터는 헝가리 이반치에 30GWh 규모의 3공장 건설에도 착수했다. 3공장의 가동 시기는 2024년이다. 미국에선 올해 1분기 9.8GWh 규모의 조지아 1공장이 상업가동을 시작하며 2023년 상반기까지 11.7GWh 규모의 조지아 2공장도 짓는다.
시장은 SK온의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고 영업현금흐름(지난해 말 기준)도 마이너스 1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라 프리IPO가 성사되더라도 자금력에 숨통이 트일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초 SK온이 전망한 4조원 자금 확보가 어려워진 상황인 데다 일부 예비 투자자들의 이탈도 예상된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프리IPO를 시작할 때만 해도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기업공개(IPO) 성공으로 SK온의 자신감이 대단했다”며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공모가 수준까지 내려오고 있어 SK온이 원했던 4조원 기업가치는 현재로선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원했던 금액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투자금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