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기업의 수출 채산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어 범(汎)정부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올해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수출기업들이 채산성 악화로 인한 어려움을 한목소리로 토로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무역업계 영향 점검회의’를 열고 주력 수출업종별 생산단가 상승 현황 및 애로사항을 점검했다고 19일 밝혔다. 회의에는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국내 16개 업종별 협·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지난 14일 러시아 타타르스탄 알메티옙스크의 타트네프트가 운영하는 석유 펌프. /타스·연합뉴스

석유협회와 석유화학협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며 “기본관세가 3%인 원유및 벙커C(B-C)유에 대해 무관세 적용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은 이미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고 미국도 0.1~0.2%의 낮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러시아산 중질 나프타 수입이 전면 중단되어 나프타 가격이 연초 대비 30% 상승하면서 올해 나프타 할당 관세액이 지난해보다 70% 증가한 3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선, 자동차·부품, 일반기계 등 금속자재 수요가 높은 업종들도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선협회는 “올해 4월 후판(두께 6㎜ 이상의 철판) 가격이 톤(t)당 140만원으로 최고가를 경신해 국내 조선소의 수익이 크게 악화했다”며 “특히 후판 가격 인상분을 공사손실충당금에 반영하면 회계상 영업손실이 무려 4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자동차부품도 차량 경량화 소재인 마그네슘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중국이 전 세계 공급량의 90%를 차지하고 있어 공급선 다변화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보통신(IT) 업종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도체는 네온 등 반도체 공정용 희귀가스 수입의 30~5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하고 있는데, 올해 1~2월 네온 수입가격이 156% 상승했다. 반도체 업계는 “단기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고는 있지만, 대체할 수 있는 중국산 가격이 더 크게 올라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봉쇄 조치로 공급망 측면에서 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기계산업진흥회는 “일부 기업들이 러시아 수출용 굴착기(45~120t급) 수주 후 부품과 자재를 선구매했으나 현재 수출길이 막혀 손실보전이 시급하다”고 했다. 중국 심천 등 봉쇄지역에 진출한 공작기계 업체들도 부품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운송이 지체되면서 판매량도 동반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은 “지금도 우리 수출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1원’을 다투는 원가절감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공급망 관리와 충분한 재고 비축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모든 가능성을 열고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