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대 대통령선거에 사용되는 투표용지가 이번 주부터 인쇄된다. 투표용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에 쓰이는 만큼 첨단 기술이 적용된다. 국내에서 투표용지를 생산할 수 있는 제지업체인 무림과 한솔제지(213500)는 상징성이 큰 투표용지를 공급하기 위해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1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이번 대선 선거인 수는 약 4400만명으로, 투표용지는 본선거와 사전선거를 합쳐 총 220톤(t)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용지는 크게 투표용지와 선거용 벽보 및 책자 등에 쓰이는 홍보인쇄물 용지로 나뉜다. 업계에서는 홍보인쇄물 등을 포함하면 이번 선거에서 총 6000t 정도의 종이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2월 28일 오전 경기 안양시의 한 인쇄소에서 관계자들이 인쇄된 투표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뉴스1

투표용지 시장 규모는 약 5억원(t당 200만원 정도)으로 크지 않다. 다만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특수 종이를 공급한다는 상징성이 있어 국내 주요 제지업체인 한솔과 무림이 경쟁하는 구도다. 일반적인 인쇄용지(백상지)가 아닌 특수 코팅지로 제작하는 투표용지는 까다로운 품질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재생지인 동시에 평활도(매끄러운 정도), 인주 흡수성, 접지성(종이가 접힌 뒤 원상태로 회복하는 정도) 등이 우수해야 납품이 가능하다.

투표용지는 자동개표 제도가 도입된 이후 높은 기술력을 요하고 있다. 선관위는 초당 약 108㎝를 검사할 수 있는 자동개표기를 사용하는데, 이때 종이걸림 현상과 개표 오류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종이 두께가 균일하면서 평활도가 높아야 하고, 정전기나 지분(종이가루)을 방지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번 대선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14명의 후보자가 등록해 투표용지 길이가 27㎝에 달하는 만큼 오류 발생 가능성이 더 크다.

인주 번짐을 막는 기술도 중요하다. 기표 후 투표용지를 접는 과정에서 투표 도장의 인주가 번지면 무효표가 될 수 있다. 또 일반 인쇄용지보다 강도가 높아야 하는데, 강도가 높지 않으면 인주의 수분이 마르면서 종이가 뒤틀릴 수 있다. 종이를 접었다 펴는 접지성도 좋아야 투표함에 접혀 들어간 투표용지가 쉽게 펴져 자동개표기에 투입될 수 있다.

현재 투표용지 시장은 무림과 한솔제지가 6 대 4로 양분하고 있다. 자동개표기가 처음 도입된 2002년 16대 대선부터 2004년 17대 총선까지는 무림의 특수지 생산 법인 무림SP(001810)가 투표용지를 전량 공급했다. 그러나 2006년 지방선거부터 한솔제지가 가세해 양사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선관위는 공정거래법상 특정 업체 제품을 추천하거나 선정하지 않고, 지역별로 선정된 입찰 인쇄소가 무림 혹은 한솔의 투표용지를 선택한다.

경기 과천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거소투표신고인명부에 등록되어 있는 선거인에게 발송할 거소투표용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20대 대선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14명의 후보자가 등록해 투표용지 길이가 27㎝에 달한다. /뉴스1

한솔제지와 무림은 ‘친환경’을 내세우며 투표용지 공급권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양사는 국제적인 친환경 제품 인증인 FSC 제품으로 투표용지 생산해 납품하고 있다. FSC는 종이의 주요 원료가 되는 펄프를 생산할 때 합법적으로 조림이 된 목재를 사용해 생산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글로벌 인증이다. 이렇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품질기준을 통과한 투표용지는 각각 ‘HANSOL투표용지’와 ‘네오투표용지’가 있다.

선거용지 시장규모는 점점 축소되고 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투표용지는 유권자 수에 비례하는데, 최근엔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홍보가 이뤄지면서 눈에 띄게 인쇄물이 감소하고 있다”며 “투표용지 납품으로 이익은 크게 남지 않지만, ‘대통령을 뽑는 종이’를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