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묻으면 썩는 데 100년 이상 걸리던 플라스틱이 이제는 6개월 만에 자연 분해되는 시대가 왔다. SK이노베이션(096770)의 화학사업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의 순환체계 구축을 위해 잘 썩는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를 만드는 것은 물론, 관련 재활용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기술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도시유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SK지오센트릭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폐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친환경 플라스틱 생태계 조성 ▲고기능성 친환경 플라스틱 제품 확대 ▲기술 기반 폐플라스틱 자원 선순환 역량 확보 및 사업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SK지오센트릭 제공

SK지오센트릭은 지난해 말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와 함께 친환경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PBAT)를 상업 출시했다. PBAT는 자연에서 미생물에 의해 6개월 안에 90% 이상이 분해되는 친환경 플라스틱 제품으로 일회용 봉투, 농업용 비닐 등에 활용할 수 있다. PBAT는 자연 토양에서 퇴비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거에 어려움을 겪는 기존 농업용 필름을 대체할 수 있다. SK지오센트릭과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24년까지 PBAT 생산능력을 연간 6만톤(t) 규모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SK지오센트릭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이를 위해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을 열로 분해시켜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인 ‘나프타’로 재탄생시키는 ‘열분해유 제조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과 함께 폐플라스틱에서 뽑아낸 열분해유로 솔벤트, 윤활기유 등의 시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엔 미국 열분해유 생산 기업인 브라이트마크와 협력해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내에 연간 10만t 규모 열분해 생산설비를 구축하기로 했다. 생산이 시작되면 국내 첫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상용화 사례가 된다.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대규모 열분해 기술이 도입되면, 플라스틱 수거 대란의 주범으로 꼽히는 폐비닐의 재활용 비중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염된 페트병과 의류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재활용하는 해중합 기술도 SK지오센트릭의 주력 분야다. 지난해 관련 기술을 보유한 캐나다 루프인더스트리의 지분 10%를 5650만달러(약 673억원)에 확보했다. SK지오센트릭은 열분해 생산시설이 들어서는 울산 부지 내에 2025년까지 연산 8만4000t 규모의 해중합 설비를 지을 계획이다.

이 외에도 SK지오센트릭은 지난달 미국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와 협력해 폴리프로필렌(PP) 폐플라스틱 재활용 생산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PP는 자동차 내장재, 가전제품, 식품 포장 용기, 장난감, 생활용품 등에 다양한 색과 형태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플라스틱 소재로, 전체 플라스틱 수요의 25%를 차지한다. 다른 소재와 첨가제를 섞어 사용하는 특성상 기존의 물리적 재활용 방법으로는 냄새, 색, 불순물 등의 제거가 어려워 대부분 소각 또는 매립하고 있다. 재생 PP 공장 설립으로 SK지오센트릭은 열분해유 기술, 해중합 기술에 더해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3대 핵심 역량’을 확보했다.

SK지오센트릭은 확보한 기술과 글로벌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2027년까지 국내외에서 생산하는 플라스틱의 100%인 연간 250만t 이상을 재활용하고, 친환경 제품 비중을 100%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2025년에 친환경 사업으로만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기준 6000억원 이상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지오센트릭의 최종 목표는 석유로부터 만들어진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다시 석유를 뽑아내는 ‘세계 최대 도시유전 기업’이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세계 최대 도시 유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2025년까지 국내외에 약 5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