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탈(脫)원전 정책을 번복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현 정부가 백지화하거나 수명연장을 금지한 원자력발전의 원상복구가 가능한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계 기관과 원전 업계는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이나 보류한 원전 사업의 재추진은 차기 정부 방침에 따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백지화한 신규 원전 건설은 차기 정부에서 행정 절차를 새로 밟아 재개해야 한다. 업계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원전 업계가 고사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이를 복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28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2020년 12월에 확정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오는 2034년까지 11기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계속 운전)을 하지 않고 중단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수명연장이 금지된 노후 원전은 고리2~4호기, 한빛1~3호기, 월성2~4호기, 한울1‧2호기 등 11기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금지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탈원전을 추진했다.

수명연장 금지는 강제성을 가진 법적 조치가 아니라 차기 정부의 방침에 따라 언제든 번복이 가능하다. 차기 정부에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정하고 노후 원전의 계속 운전을 추진하면 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영구정지를 결정한 원전이 아니라면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관계 기관의 공통된 입장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중단된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3·4호기 예정지.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원전이 설계 수명을 연장해 계속 운전하려는 경우 주기적 안정성 평가보고서를 설계수명 만료일 2년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이후 경제성 평가와 안전성 평가 등을 거쳐 원안위가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내년 4월에 40년의 설계 수명이 끝나는 고리 2호기의 안전성 평가 수행 업체를 선정하는 등 경제성 평가에 돌입했다. 올해 상반기 중 결과가 도출될 전망이다. 한수원은 감사원 요구에 따라 원전 경제성 평가 지침을 마련하면서 고리 2호기의 안전성 평가 작업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평가 지침을 통해 고리 2호기 계속 운전의 경제성이 좋다는 결과가 나오면 한수원은 원안위에 가동 연장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

고리 2호기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가 계속 운전을 중지한 11기 원전 역시 이런 절차를 거쳐 계속 운전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고리 2호기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가동 중단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계속 운전을 공약했다.

문재인 정부가 백지화한 원전의 경우 그동안 사업이 어느정도 진행됐는지에 따라 재추진 여부가 갈린다. 경북 울진군에 건설 중이었던 신한울 3‧4호기는 현재 사업 보류 상태라 차기 정부 방침에 따라 재추진이 가능하다. 신한울 3‧4호기는 2008년 수립된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건설계획이 확정됐다. 이후 부지 매입을 마치고 2017년 2월 산업부로부터 사업허가를 받았고 공사도 시작했으나 공정률 30% 수준에서 문재인 정부가 인허가를 보류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당초 문재인 정부는 신한울 3‧4호기의 백지화를 검토했으나, 업계와 해당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로 인허가 결정을 차기 정부에 넘겨 면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신한울 3‧4호 공사 재개에 대해선 이재명, 윤석열 후보 모두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공사가 오랜 기간 지연되면서 준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신한울 3·4호기는 당초 2022·2023년에 각각 준공될 예정이었다. 업계에서는 연내 공사가 재개되더라도 신한울 3·4호기를 준공하는 데 최소 7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송·배전망 구축에 따른 주민 동의가 지연되면 실제 가동은 더욱 미뤄질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전면 백지화해 사업에 착수하지도 못한 원전은 재추진이 더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천지 1, 2호기, 대진 1, 2호기 등 총 4기의 원전을 백지화됐다. 천지 1, 2호기는 경북 영덕으로 부지 선정을 마쳤으나 건설이 취소됐다. 차기 정부가 천지 1, 2호기를 재추진한다면 경제성 평가부터 사업허가, 부지 매입 등의 행정 절차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이 지역에 지급한 원전 유치 특별지원금 409억원도 이미 회수돼 부지 선정부터 다시 해야할 수도 있다. 현재 정부와 지역 주민은 지원금 환수 문제를 놓고 소송을 하고 있다. 부지 선정도 하지 않은 대진 1, 2호기는 재추진 여부가 불투명하다.

탈원전 정책 폐지를 공약한 윤 후보가 백지화된 원전의 재추진을 약속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탈원전 대신 감(減)원전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백지화 원전 재추진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 산업이 무너졌고, 탈원전 정책에 맞춰 기업들이 사업을 축소해 왔다”며 “차기 정부가 원전을 재추진해도 한번 무너진 산업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