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글로벌 경제와 기업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총매출은 2020년 31조7000억달러(약 3경8040조원)로 전년 대비 4.8% 감소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가량을 차지하는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의 위축은 글로벌 경제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충격을 반영한다. 위기 속에도 신흥 강자로 도약한 기업들이 적지 않다. 포천이 1995년부터 발표한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와 영국 브랜드 평가기관 브랜드 파이낸스가 2007년부터 내놓고 있는 글로벌 500대 브랜드 리스트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지난해 실적과 브랜드 가치 기준으로 글로벌 500대 순위에 사상 처음 진입하거나, 재진입한 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글로벌 기업들이다. ‘이코노미조선’은 팬데믹으로 인해 신흥 강자로 부상한 기업들을 조망했다. 경영 산업 전문가들로부터 한국 기업이 향후 생존을 넘어 성장하기 위한 조언도 들었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 서울대 경영학 학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MBA,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위대한 패배자들’ 저자. /성균관대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중앙대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효성그룹, 현대그룹 근무, ‘비대면 사회: 변화와 혁신’ 공저. /현대경제연구원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 서울대 경영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학 박사, ‘숫자로 경영하라’ 저자. /서울대

경영 석학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독일의 경영 구루 헤르만 지몬 지몬 쿠허 앤드 파트너스 회장과 함께 공동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경제 잡지 ‘포천’의 글로벌 500대 기업을 분석해 한국 기업에 경영 제언을 하는 내용이다. 9월 28일 ‘이코노미조선’과 만난 유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고, “기업의 사이즈(크기)가 중요해지고 있다. 장기 이익을 찾으려는 경영 문화가 자리 잡게 하는 노력이 긴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조선’은 유 교수 및 30여년간 산업정책을 연구한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그리고 경영 전문가인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를 인터뷰했다. 이들은 “디지털화와 그린화를 통해 ‘가치 통합자(value integrator)’가 되는 기업이 시장을 석권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선 정부의 규제 개선과 정책적인 지원도 중요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경제의 장단점은.

이장균 “인적 자원이 장점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글로벌 가치사슬(GVC)에서 주로 선진국 시장(수출 시장)을 대상으로 최종 제품을 공급하는 위치에서 선진 업체를 따라 하는 ‘팔로우업’ 전략을 취해 성공했다. 우수한 인력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방식은 성공하기 어렵다. 파괴적인 기술에 기반한 신제품 및 시장 개발에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팬데믹에 따라 주요국 모두 ‘자국 우선주의’를 키워드로, 핵심 전략 제조업(반도체, 배터리, 의약 등)의 공급망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미·중 갈등 심화로 시장 분단, 기술 분단도 우려된다. 과거 한국의 성공 전략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게 됐다.”

유필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강점은 막강한 수출 경쟁력이다. 지난 10년간(2010~2019년) 한국은 5조6890억달러(약 6826조원)를 수출했는데 이는 중국,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5위 규모다. 더 의미 있는 지표인 1인당 수출액(2010~2019년)은 세계 1위인 독일의 16만8594달러(약 2억231만원)에 이어 우리가 2위(11만2219달러)다. 한국 기업은 대체로 반도체, 스마트폰, 철강, 자동차, 배터리, 조선 등 제조업 분야에서 강하다. 하지만 소수의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도 하다. 독일의 경우는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세계 초일류 중소기업 즉, 히든 챔피언 총 2744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307개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21개밖에 없다.”

기업의 미래 먹을거리 키워드는.

이장균 “디지털 변혁(DX) 및 그린 변혁(GX)과 관련된 제품 및 서비스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을 살펴봐도 최근 돈이 몰리는 시장이 바로 여기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전 세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재정 지출 총액이 13조달러(약 1경5404조원)에 달했다. 재정 투자 집행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고용 유지, 소비 유지’와 함께 ‘디지털화, 그린화’다.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은 시장과 제품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DX와 GX 트렌드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다만 과거에는 경쟁이 최종 제품을 놓고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다수의 최종 제품과 서비스가 모여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솔루션을 줄 수 있는 플랫폼 간 경쟁으로 바뀐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시장 주도권을 쥔 업체는 최종 고객에게 최종 상품을 제안하면서, 이들로부터 습득한 시장 정보로 시장을 좌지우지한다.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가 대표적이다.”

유필화 “디지털화, 전문화, 세계화다. 핵심 역량에 집중함으로써 차별화한 제품 및 서비스를 지속해서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전 세계 시장에 팔아야 한다. 제품, 서비스에서 디지털화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디지털화해야 한다. 디지털화는 원가 절감, 제품 경쟁력 향상, 고객 만족도 제고 등에 모두 이바지한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제품 생산 등이 우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또한 문화 산업이 우리의 믿음직한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이장균 “국내 제조 업체는 지금까지의 ‘단품 제조 모델’에서 벗어나 DX와 GX와 관련된 최종 제품, 서비스, 솔루션을 창출해 플랫폼 기반으로 이런 제품과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 중심 제조 모델’로 변혁해야 한다. 물론 플랫폼 구축에 필요한 소프트웨어(SW), 콘텐츠 등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부문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필화 “유연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기업 문화를 가진 기업들이 약진할 것이다. 그리고 내연기술(combustion technology)에 바탕을 둔 제조 업체와 고정비 비중이 높은 대형 유통회사는 상대적으로 그 위상이 떨어질 것이다. 반면 연구개발(R&D) 비중이 높고, 혁신적이며 지식 집약적인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전망이 밝다. 제약사 화이자와 모더나의 사례가 좋은 본보기다.”

팬데믹 여파로 바뀔 글로벌 기업 지형은.

이장균 “앞으로 기업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업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자기 손으로 모든 경영 활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항상 연결된 비즈니스 모델(ACE BM· Always-Connected Economy Business Model)’을 갖춰야 한다. 현재 자국 우선주의 경향도 결국 이 같은 통제권 강화 기조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디지털 시장 주도 업체가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글로벌 빅테크 업체였지만, 앞으로는 오프라인 기반이었던 전통 업체의 커넥티드 카, 스마트 선박,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 비즈니스 등의 치열한 경합이 일어날 것이다. 주 업종을 넘어 가치 통합자 자리를 꿰차는 기업이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는 의미다.”

최종학 “팬데믹이 가속화하는 디지털라이제이션 추세가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지속할 것이다. 이에 따라 생산 시장과 소비 시장이 동시에 국제화하는 추세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한국 기업이 이런 추세에서 생존을 넘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를 모두 국제화하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국내에서 핵심적인 경영 활동을 계속 수행하지만, 생산 원가와 운송비를 포함해 총원가가 가장 적게 소요되는 곳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제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제언은.

유필화 “반기업 정서 등이 기업 성장을 제약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일례로 독일이 발표한 ‘국가산업전략 2030(National Industrial Strategy 2030)’에는 기업 규모 문제가 거론됐다. 이는 해외의 기계 설비 및 거대 플랫폼 업체에 대항하기 위해 자국의 지멘스, 티센그룹, 폴크스바겐 등 대기업의 인수합병(M&A) 규제를 대폭 완화해 거대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 정부도 이를 유념해야 한다.”

이장균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는 데 정책이 집중되겠지만, 이와 함께 변혁 시기에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파이를 지금보다 더 크게 확보하는 산업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 속도전도 중요하다.”

최종학 “장기적으로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면, 국내에서는 유휴인력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인력들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창출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정부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을 혁신해서, 앞으로의 세상에서 필요한 인력들을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 이공계 인력뿐만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활약할 수 있는 외국어와 해외 문화에 능통한 인력의 배출을 촉진해야 한다. 또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서비스 산업은 고용유발계수가 높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유필화 “팬데믹으로 본격적인 변혁의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전통 업체와 ICT 업체가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총력해야 한다.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거나 단독으로 대처한다면 공멸한다. 정부도 위기감을 가지고 획기적으로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기업의 혁신 능력을 높이기 위한 과감한 지원은 말할 것도 없다. 성공한 기업과 기업인, 특히 청년실업가 사례를 지속해서 발굴해 널리 알리는 노력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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