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엔터테인먼트(JYP Ent.(035900))가 최근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신인 걸그룹의 한정판 데뷔 앨범을 4만여장 판매하는데 성공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 투자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수의 유명한 아티스트에게 실적이 달려있어 ‘투자 위험' 평가를 받아왔던 엔터 업계가 회사 자체의 기획력·신사업 등으로 투자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국내 대형 엔터업체들도 소속 아티스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25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따르면 JYP엔터가 2022년 2월 발표하는 신인 걸그룹의 데뷔 앨범 한정반이 판매 개시 당일인 16일부터 20일까지 3만9545장 판매됐다. 또 핫트랙스, 인터파크 등 주요 온라인 음반 판매 사이트의 일간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화제를 모았다. 이 패키지 가격은 2만원. 내년 2월 그룹 데뷔 시점에 발송 예정이며 한정반 CD, 포토북, 포토카드, 포스터, 프리미엄 멤버십 카드, 랜덤 폴라로이드 등으로 구성됐다. 오는 25일까지인 사전 판매 기간이 지난 후에는 제작 및 구매가 불가능하다.

2022년 2월 데뷔 예정인 JYP엔터테인먼트 신인 걸그룹 블라이드 패키지 포스터.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주목할 점은 이 프로모션이 신인 걸그룹에 대한 멤버·노래 등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개됐다는 것이다. JYP엔터 측은 원더걸스, 트와이스 등 수많은 걸그룹을 성공시켜온 회사 측의 자신감과 K팝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신인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에는 회사 설립 이래 최초 여성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지영 이사를 필두로 원더걸스 선미, 트와이스 정연·사나·지효·쯔위 등 아티스트를 캐스팅 및 트레이닝한 팀이 참여했다.

실제 구입자들 사이에선 “주식으로 따지면 과거 실적이 꾸준히 좋았으니 앞으로도 좋을 것으로 보고 매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팬들 사이에서 JYP엔터는 배출한 걸그룹들(원더걸스·미쓰에이·트와이스·ITZY)이 모두 잘 돼 이른바 ‘걸그룹 명가’로 통한다. 일각에서는 JYP엔터 소액 주주로서 매출에 기여하고자 샀다는 의견도 나왔다.

하이브(352820)(옛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이 앞다퉈 해외에서 오디션을 열고 글로벌 K팝 그룹 양성에 뛰어드는 것도 이같은 기획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하이브는 유니버설뮤직그룹(UMG)과 손잡고 내년 데뷔를 목표로 북미에서 글로벌 오디션 프로젝트를 열 예정인데, 선발된 아티스트들에게 하이브의 성공 방정식을 적용해 파급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즉 아티스트가 누가 뽑히느냐가 아닌, 방탄소년단(BTS) 등으로 인정받은 K팝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왼쪽부터 박지원 하이브 대표이사, 윤석준 하이브 아메리카 CEO, 스쿠터 브라운 하이브 아메리카 CEO, 한현록 하이브 재팬 CEO. 하이브는 지난 1일 글로벌 경영 가속화를 위한 공격적인 리더십 정비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엔터기업이 아티스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매출 다각화를 꾀하기 위한 또 다른 시도로는 아티스트 IP(지식재산권)을 활용한 신사업 강화가 있다. 하이브는 자회사 위버스컴퍼니가 개발·운영하는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에 최근 잇달아 경쟁사인 YG엔터테인먼트(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와 IT기업 네이버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 브이라이브와 손을 잡았다. 이에 국내외 가수 28개 팀의 팬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되면서 팬 커머스 플랫폼인 위버스샵을 통한 매출 증대도 기대되고 있다.

JYP엔터도 IT기업과 협력해 플랫폼 사업에 발 벗고 나섰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인 두나무와 함께 K팝을 기반으로 한 대체불가토큰(NFT) 플랫폼을 만든다는 것이다. 아직 경쟁사들이 진입하지 않은 NFT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041510)) 역시 팬 커뮤니티 플랫폼 ‘버블’을 운영하는 자회사 디어유를 올해 하반기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그동안 시장에서는 엔터 기업들의 미래가 잘나가는 한 아티스트에만 의존한다는 시각이 우세했는데,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육성 시스템 등 회사 자체의 경쟁력에 투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면서 “대표적으로 하이브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BTS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97%에 달했지만 지난해 플레디스 인수를 통해 85%로 낮아졌고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한 올해는 60%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