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일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28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한국전력공사 사장에 오른다. 신임 한전 사장은 신재생 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직접 발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전기를 독점 판매하고 있는 한전이 기술력과 자본력을 앞세워 발전 시장까지 진출하는 것은 공정 경쟁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산업부 차관 시절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을 직접 수립한 정 전 차관이 어떤 묘수를 낼지 주목된다.
한전은 이날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정 전 차관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후 문승욱 산업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의 임명을 받게 된다. 전임자였던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의 경우 주총부터 청와대 임명까지 3일이 소요됐다. 이를 고려하면 정 전 차관 역시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내달 초 업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기는 3년이다.
신임 한전 사장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상황이다. 정부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을 제로 상태에 이르게 하는 ‘탄소 중립’을 목표로 에너지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산업부가 수립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원전·석탄 발전 설비 비중은 현재 46%에서 25%까지 줄이고,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비중은 15%에서 40%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신재생 에너지에서만 전체 발전량의 20.8%를 뽑아낸다는 방침이다. 현재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은 6.5%에 불과하다.
에너지 발전사업은 대규모 투자와 고도화된 기술이 수반돼야 한다. 결국 민간의 힘만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운만큼, 거대 공기업인 한전을 신재생 에너지 발전사업에 투입시켜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중이다. 한전은 10년 이상 진전이 원활하지 않았던 신안 및 서남해 해상풍력 사업에 직접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현행법상 한전의 직접 발전이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이에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7월 한전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간 주도 개발이 어려운 해상풍력과 같은 대규모 사업에 한해 한전이 공적 역할을 수행한다면 산업 생태계가 체계적으로 육성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법안은 1년 가까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장과 시민단체, 전문가들조차 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 판매와 송배전 전력망을 독점 관리하는 한전이 직접 발전 사업에 진출하게 되면 자신들의 사업과 관련된 인프라 투자에만 치우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민간 사업자들의 전력망 연결은 어려워지고,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이 직접 발전시장에 뛰어들면 내부 거래를 통해 경쟁사보다 발전 단가를 낮추고,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심각한 시장 교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전의 수장을 맡게 되는 정 전 차관이 어떻게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고 신재생 에너지 발전 사업을 추진할지가 관심이다. 정 전 차관은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 에너지자원실장,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까지 산업부 차관직을 수행하며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 수립에 직접 관여한만큼 높은 정책 이해도를 바탕으로 조만간 국회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