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초 영국 런던. 도심을 달리는 수많은 차량 가운데 번호판 왼쪽 가장자리에 녹색 표시가 있는 전기차가 자주 눈에 띄었다. 차량 브랜드는 폭스바겐, BMW, 테슬라, MG모터 등 다양했는데, 현대차(005380)기아(000270) 로고가 붙은 차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짐을 싣고자 호출한 우버(Uber) 기사는 기아의 신형 EV9 차량을 운행하고 있었다.

런던 시내에서 전기차를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정부의 강력한 보급 정책 때문이다. 영국은 지난 2019년 세계 최초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했고, 올해부터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전기차를 일정 비율 이상 판매하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차·기아도 여러 전략 차종을 앞세워 영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현대차의 아이오닉5(왼쪽), 기아의 니로(오른쪽) 전기차가 도심을 주행하고 있다./런던(영국)=정재훤 기자

영국자동차공업협회(SMMT)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영국 내에서 신규 등록된 차량(14만786대) 중 순수 전기차(BEV)는 4만3656대로 전체의 31%를 차지했다. 영국의 순수 전기차 판매 비율은 5개월 연속 20%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영국의 휘발유와 경유차 판매량은 각각 전체의 42.2%(5만9455대), 5%(7060대)였다. 하이브리드차(H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는 각각 10.4%(1만7899대), 9%(1만2716대)씩 팔렸다.

영국 정부는 제조업체들이 2024년부터 판매 차량 중 일정 비율을 전기차·수소차 등 무공해 차량(ZEV·Zero Emission Vehicles)으로 판매하도록 지난해 9월 의무화했다. 이 비율은 2024년 22%, 2026년 33%, 2028년 52%, 2030년 80%로 점차 상승하며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 신차 판매가 완전히 금지된다. 만약 전기차 할당 비율을 초과해 내연기관차를 판매하면 차량 1대당 1만5000파운드(약 27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영국 런던 시내에 있는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일렉트릭, 기아의 니로 EV. / 런던(영국)=정재훤 기자

영국은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중국산 전기차에도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 수입품에 17.8~45.3%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유럽연합(EU)과는 비교되는 행보다.

현대차그룹은 영국 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는 지난해 영국 자동차 시장에서 총 20만5270대를 판매했다. 브랜드별 판매량은 현대차가 전년 동기 대비 5.4% 성장한 9만1808대, 기아가 4.2% 증가한 11만2252대를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은 현대차 9위(4.7%), 기아 4위(5.75%)로 두 회사 물량을 합하면 10%가 넘었다. 이는 판매량 1위 업체인 폭스바겐(8.52%·16만6304대)보다 높은 수치다.

영국 런던 서부 브렌트퍼드(Brentford)에 있는 기아 대리점에 EV9 차량이 전시돼 있다. / 런던(영국)=정재훤 기자

현대차그룹의 영국 내 전기차 판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제네시스의 전기차 판매 대수는 총 3만4292대로, 전년 동기 대비 7.52% 증가했다.

현대차와 제네시스는 작년 영국 시장에 아이오닉 5 N을 투입하며 2020년 2종(▲아이오닉 EV ▲코나 EV)에 그쳤던 전기차 라인업을 4년 만에 7종(▲코나 EV ▲아이오닉 5 ▲아이오닉 5 N ▲아이오닉 6 ▲GV60 ▲GV70 EV ▲G80 EV)으로 늘렸다. 기아는 2023년 하반기 전국 딜러 로드쇼 개최 등을 통해 영국 시장에 소개한 EV9가 가세하고, 2024년 EV3가 추가되며 전기차 모델이 5종(▲쏘울 EV ▲니로 EV ▲EV3 ▲EV6 ▲EV9)으로 확대됐다.

영국의 LCV(경상용차) 전문지 ‘왓 밴’이 발표한 ‘왓 밴 어워즈 2025′에서 ‘주목해야 할 차’로 선정된 기아의 전기차 PV5. / 현대차·기아 제공

현대차 아이오닉 5 N은 지난해 5월 영국 자동차 전문지 ‘탑기어(TopGear)’ 주관 전기차 시상식에서 ‘최고의 핫 해치 전기차’에 선정됐다. 기아 EV9은 3월 ‘2024 영국 올해의 차’를 수상했고, EV3는 지난달 영국 유력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가 주관하는 ‘2024 탑기어 어워즈’에서 ‘올해의 크로스오버’로 선정됐다. 지난달 초에는 올해 출시를 앞둔 PV5가 영국의 LCV(경상용차) 전문지 ‘왓 밴’이 발표한 ‘왓 밴 어워즈 2025′에서 ‘주목해야 할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영국은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시장으로 주요국 중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노력을 통해 전기차 등 현지 고객 수요에 맞는 차량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