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최근 자국 정부에 중국산 흑연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를 만들 때 사용되는 원재료 흑연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인데,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표적 관세’ 때문에 생산비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배터리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096770) 역시 중국산 흑연에 대한 표적 관세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과거 트럼프 행정부가 구축한 대중(對中) 고율 관세를 유지하겠다면서도 일부 중국 수입 제품에 부과되는 관세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 완성차 업체는 물론 주요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는 가운데,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의 지배력이 커지고 있어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생산 차질이 만성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중국 선양에 있는 BMW 배터리 공장 모습./BMW 제공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원자재는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망간, 구리 등이다. 이중 미국 백악관은 확보 능력과 지속가능성, 미국 업체의 경쟁력 등을 고려해 리튬, 고순도 니켈, 코발트를 특히 중요한 원자재라고 평가했다.

각 원자재별로 매장량이 각기 다르지만,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이들 핵심 원자재를 구매하려면 중국을 거쳐야 하는 상황은 대체로 비슷하다. 중국은 원자재 보유량이 많을뿐더러, 원자재 가공 비중도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흑연의 경우 매장량 자체는 세계적으로 풍부하지만, 아프리카 지역에서 채굴되더라도 처리와 정제는 대부분 중국에서 이뤄진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주요국은 사용되는 흑연 70~80%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니켈의 경우 캐나다, 노르웨이, 호주에서 많이 생산되는데, 배터리에 들어가는 고순도 니켈은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생산한다. 인도네시아 니켈 산업에는 중국 자본이 대규모 투자돼 있다.

광산과 염호, 사막에서 채굴하는 리튬 역시 매장량은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에 많고 중국 내 매장량은 10%가 채 되지 않지만, 호주에서 생산된 리튬의 90%가 중국으로 넘어간다. 가공 시설 대부분이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상당수 원자재 가치 사슬의 후속 단계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고 있는 완성차·배터리 업체와 주요국 정부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응하는 한편,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과제도 떠안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은 핵심 자원을 무기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지난해 반도체 공급난이 완성차 생산 차질을 일으킨 것처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가 전기차 생산에 큰 리스크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계는 이미 지난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요소수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요소의 80%가 중국에서 수입되는데, 중국이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요소가 필요한 경유차는 물론 물류, 건설, 화학 등 산업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 제 2, 3의 요소수 사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와 업계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핵심 원자재의 높은 중국 의존도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정부는 강력한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통해 배터리 공급망 업스트림(원자재 채굴·가공)을 비교적 탄탄하게 육성했다”며 “앞으로 몇년 동안은 중국이 이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업체는 현지화된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고 각국 정부도 이를 지원하고 있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개선 작업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해 포스코케미칼과 배터리 소재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테슬라는 호주 광산 업체 시라리소스와 흑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