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후 18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영화 '미키 17'의 개성 만점 여성 캐릭터들이 화제다.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미키 17'에 등장하는, 개성은 물론 각자의 영역에서 최상의 능력치를 가진 여성 캐릭터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범상치 않은 '미키 17'의 여성 캐릭터 열전, 그 맨 앞자리에는 ‘나샤’가 있다. 얼음행성 ‘니플하임’으로 향하는 개척단의 비행 첫날, 카페테리아에서 ‘미키 1’을 처음 발견해서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먼저 손을 내민 ‘나샤’. 그는 유독가스에 대한 인체 반응 실험 때조차 ‘미키’와 달리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걸고 ‘미키’의 곁을 지키고, ‘미키 18’이 출력된 불법인 ‘멀티플’ 상황에서도, 모든 미키는 ‘나의 미키’라고 부르짖는 용감함을 지녔다.

그는 ‘미키 1’부터 ‘미키 18’이 ‘미키 반스’로 제 이름을 되찾는 영화의 여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크리퍼’가 ‘미키’를 해치려던 게 아니라 사실은 구해준 것이라는 사실을 ‘미키’에게 알려주고, ‘마셜’에게 “그러니까 선거에서 떨어지지”라고 자존감에 상처를 내는 결정적 한 마디를 날리는 것 역시 ‘나샤’다. 멸시와 구박, 죽음에 이르는 극한 노동의 조건조차 다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이는 ‘미키’ 대신 분노하고 반격하는 ‘나샤’는 개봉 직후부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극 중 ‘미키’와 관객들의 공통 궁금증인 ‘저렇게 완벽한 사람이 뭘 보고 ‘미키’를 좋아할까?’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빌어먹을 세상따위] 시즌2와 '블링크 트와이스',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 등 전작들을 연상시킬 수 없는 강렬함과 개성으로 ‘나샤’를 체화한 나오미 애키의 호연도 더불어 회자되고 있다.

개봉 후, 관객들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은 여성 캐릭터로 과학팀이자 의학팀의 기둥인 ‘도로시’를 빼놓을 수 없다. 권력자인 ‘마셜’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 더 치중하고, 개발한 유독가스에 자기 이름인 ‘아카디 3’을 붙이는 데서 볼 수 있듯, 명예에 진심이지만 일에는 무능한 팀장 ’아카디’가 위기 상황 때마다 목놓아 부르는 ‘도로시’, 그 이름의 주인공이다.

‘미키’가 출력될 때 트레이조차 받쳐주지 않고 태블릿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는 다른 팀원과 달리 ‘미키’를 챙기고, 10분 밖에 살지 못할 몇 번째인지도 모를 ‘미키’에게 ‘그래도 15분이라 굿 뉴스’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미키 17’과 ‘베이비 크리퍼’의 상호작용을 지켜보고 통역기를 발명해 ‘미키’가 인류를 구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도로시’는 유능한 실무 책임자로, 목소리만 크게 내는 무능한 팀장 밑에 일하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의 마음에도 공 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영국 왕립 연극원 출신으로, 영국 극장협회에서 시상하는 최고의 연극상인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한 팻시 페란. 그가 연기한 ‘도로시’는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 ‘미키’를 인간으로 대하는 ‘인간미 있는 유능한 과학자’캐릭터의 표상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한편, 칼로리 한 자리까지 제한되는 상황에서 ‘미키’에게 자기 음식을 나눠주고, ‘마셜’과의 스페셜 디너에서 인공 배양육 실험에 동원된 ‘미키’ 대신 ‘마셜’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요원 ‘카이’도 관객들의 눈에 띈 캐릭터다.

봉준호 감독이 심사위원장이었던 2021년 제78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레벤느망'에서 원치 않는 임신과 불법 낙태를 겪는 주인공 ‘안’을 연기해 세자르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는 그 인연으로 '미키 17'의 ‘카이’로 캐스팅되었다. 부당함에는 맞서지만, ‘베이비 크리퍼’인 ‘루코’에게 맹사격을 퍼붓는 요원이고, ‘미키 17’과 ‘미키 18’을 나눠서 공유하자고 ‘나샤’에게 제안하기도 하는 ‘카이’는 ‘마셜’이 ‘니플하임’에 창궐시키고자 하는 우수한 백인 유전자를 가진 여성의 표본인 동시에, 그 의도 자체에 반발하는 입체적인 면 모로 관객들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키 17'의 여성 캐릭터 열전, 그 끝판왕인 ‘마마 크리퍼’가 화제의 중심이다. ‘미키’가 인간들 사이 16번의 죽음을 인간 취급 못 받는, 동의서에 서명했으니 죽어도 괜찮은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데 비해, 종족의 아기 한 명의 목숨까지 전 종족을 이끌고 지키려 하는 ‘니플하임’의 원주민의 지도자인 ‘마마 크리퍼’. 얼음 크레바스에 조난된 ‘미키 17’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돌려보내며 배웅까지 해 주고, 억울하게 희생된 ‘루코’의 목숨값을 인간 한 명의 목숨으로 요구하는 그는 봉준호 감독에 의하자면 5선 이상의 의원, 원내 대표 같은 협상력과 책임감, 결단력을 가져 ‘마셜’과 정확하게 대조되는 캐릭터다.

특히, ‘마마 크리퍼’의 목소리가 사운드 팀의 특수효과 필터가 거의 적용되지 않은, 프랑스 배우 아나 무글라리스의 육성이란 점도 화제다. 2009년 칸 영화제 폐막작인 <코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에서 ‘샤넬’ 역을 연기하기도 한 그는 '레벤느망'에서 그의 연기를 눈 여겨 본 봉준호 감독에 의해 ‘마마 크리퍼’로 캐스팅되었다. 사운드 담당인 라이브톤 최태영 사운드 슈퍼바이저가 촬영 전 녹음한 ‘마마 크리퍼’의 목소리 샘플을 토대로, 촬영 현장에서 로버트 패틴슨의 건너편에서 실제로 ‘마마 크리퍼’를 연기한 아나 무글라리스 덕에 깊이감과 존재감을 다 갖춘 희대의 여성 캐릭터, ‘마마 크리퍼’가 태어났다.

이들 외에도 빌런 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일파 마셜’도 '미키 17'의 여성 캐릭터 열전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알고 보면 진짜 실세는 이분?”, “이것도 찐사랑인 걸 보니 로맨스 영화 맞네” 등의 반응을 이끌고 있는 ‘일파 마셜’은 소스에 대한 집착과 허세, 마지막 악몽 장면으로 섬뜩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표정 연기의 달인임을 입증한 '뮤리엘의 웨딩', '식스 센스', '유전'에 이어 토니 콜렛은 명불허전 명배우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모든 캐릭터들의 디테일까지, 보면 볼수록 파고 들어가는 덕심 자극 재미가 가득한 봉준호 감독의, 사람 냄새 나는 SF영화 '미키 17'은 국내 극장에서 260만을 넘겨 300만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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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OSEN=하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