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 한니발은 카르타고 군을 이끌고 로마를 공격하기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그는 산맥 남쪽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코끼리까지 동원했다. 수많은 병사와 동물들은 험준한 산악 지형과 혹독한 추위로 목숨을 잃었다. 한니발은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겠다”는 결의로 전진했다.

로마인들은 알프스가 자연이 만든 요새라 믿었다. 적군이 산맥을 넘어오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는 “북쪽에서 적이 온다는 것은 하늘에서 적이 내려온다는 말과 같았다”고 기록했다. 결국 한니발의 기습 공격은 성공했다. 그는 강대국 로마군을 소수 병력으로 여러 차례 격파했다.

경계를 넘어서는 도전은 때로 놀라운 결과를 만든다. 오늘날 세계 경영학에서 주목받는 블루오션 전략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전략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을 피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라고 조언한다.

이탈리아 최북단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지역 칸티나 트라민(Cantina Tramin)은 알프스 산맥과 맞닿은 와이너리다. 이 지역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국내에는 관광지이자 동계스포츠 명소 돌로미티로 유명하다.

으레 다른 산촌들처럼 이 지역 농부들 역시 생계가 넉넉지 않았다. 산등성이 비탈은 포도밭으로 경작하기에 너무 가파랐다. 여느 국경 마을들처럼 이 지역도 영토 분쟁을 겪었다.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땅이었다. 종전 후에야 이탈리아로 넘어왔다. 이후 두 나라는 여러 차례 영토 분쟁을 벌였다. 어느 쪽 중앙정부도 이 지역을 지원하지 않았다.

칸티나 트라민은 1898년 트라민 마을 사제이자 후에 오스트리아 의회 의원이 된 크리스티안 슈롯이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그는 알프스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포도를 재배하던 지역 농부들 생계를 돕기 위해 조합을 세웠다. 개인 힘으로 밭을 일구기 어려워지자, 공동체 힘을 모았다. 오늘날 칸티나 트라민은 160여 가구 포도 재배자들이 함께 일하는 대형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그래픽=정서희

이들은 알프스라는 포도 재배에 불리해 보이는 지리적 여건을 강점으로 바꾸기 위해 한니발과 같은 결단을 내렸다.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초입에는 알프스 빙하가 녹아 만든 거대한 가르다 호수가 자리한다. 이 호수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칼바람 부는 협곡이 나타난다. 칸티나 트라민은 이 협곡에 자리를 잡았다.

이 협곡은 알프스의 차가운 기운과 지중해의 따뜻한 공기가 만나는 경계다. 낮에는 지중해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지만 밤이 되면 알프스 산맥에서 차갑고 싸늘한 기운이 내려온다. 이 지역 사람들은 추위를 녹여주는 낮바람을 ‘오라(Ora)’라고 부른다. 시간, 기다림을 의미하는 단어(hour)에서 따온 말이다.

볼프강 클로츠 칸티나 트라민 마케팅 디렉터는 “우리 와인의 가장 큰 비밀은 큰 일교차”라며 “낮과 밤 온도 차가 15~20도에 달해, 따뜻한 햇살은 포도를 충분히 익게 하고 서늘한 밤공기는 신선한 산도를 유지해 준다”고 말했다.

포도는 해발 250~850m 고지대, 석회질 점토와 자갈이 섞인 토양에서 재배한다. 포도밭은 연간 300일 이상 맑은 날씨를 누리며 풍부한 햇살을 받는다. 모든 포도는 손으로 수확하고, 별도로 만든 상자에 조심스럽게 담아 과육 손상을 최소화한다.

칸티나 트라민 소비뇽은 ‘소비뇽 블랑’이라는 포도 품종만 사용해 만든다. 와인 애호가들은 소비뇽 블랑하면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이나 프랑스 루아르 지역을 먼저 떠올린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강렬한 열대과일 향과 쌉싸름한 잔디 향이 특징이다. 프랑스 루아르 소비뇽 블랑은 독특한 짭조름함과 감귤류 향이 두드러진다.

반면 칸티나 트라민 소비뇽은 알프스 지역 허브향이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알프스의 청량감과 지중해의 성숙미가 묘하게 공존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은 2022년 빈티지에 91점을 부여하며 “뉴질랜드나 프랑스 소비뇽 블랑과는 다른 이탈리아 북부만의 독특한 표현력”이라고 칭찬했다.

윌리 슈튀르츠 칸티나 트라민 와인메이커는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양조 방법과 현대 기술을 결합해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한 현대적인 와인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놀라게 했듯, 칸티나 트라민은 뉴질랜드와 프랑스가 양분한 소비뇽 블랑 시장에 등장한 신선한 선택지다. 이들의 도전은 경계를 뛰어넘는 창의성이 얼마나 값진 결실을 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 와인은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구대륙 화이트와인 가운데 최고 와인에 주는 베스트 오브 2025를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나라셀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