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고급 시계 브랜드 가운데 누구나 인정하는 1위 브랜드가 있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이다. 1839년 시작한 이 브랜드는 현재 널리 쓰이는 손목시계를 최초로 만들었다. 최초로 전자시계를 만든 브랜드도 파텍 필립이다. 시계 가격은 최소 1억원대에서 시작한다.

‘당신은 파텍 필립을 소유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다음 세대를 위해 잠시 맡아둔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 플랑레와트에 자리한 파텍 필립 공장에는 이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이 브랜드는 설립 이후 화려한 마케팅보다, 묵묵히 시계를 만드는 스위스 전통을 고수해왔다. 몇몇 모델은 주문부터 완성까지 9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텍 필립 애호가들은 이런 철학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실제 이들이 만든 시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가치가 올라간다. 2019년 경매에서 1940년대 제작한 파텍 필립 시계는 3100만달러(약 410억원)에 낙찰됐다.

‘빨리빨리’ 문화가 지배하는 오늘날, 파텍 필립 같은 기업은 드물다. 대다수 기업이 분기별 실적에 일희일비하며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쏟아내지만, 정작 소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파텍 필립처럼 시간을 두고 정성을 들이는 기업은 그 수가 적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은 소비자 신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브랜드 자산이 된다.

스페인 북부 리오하 지역 와인 산업도 이와 닮았다. 리오하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와인 산지다. 역사는 파텍 필립이 문을 열었던 시기와 유사한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전역에는 포도나무뿌리 진디병(필록세라)이 창궐했다. 세계적인 와인 산지 보르도는 비상이 걸렸다. 보르도 와인 상인들은 망가진 포도밭을 대신할 곳을 찾아 온 유럽을 떠돌았다.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리오하에 정착했다. 그들은 리오하 기후가 보르도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리오하 지역을 따라 지중해까지 흐르는 에브로강 주변 비옥한 토양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리오하 와인 생산자들은 1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착실히 와인 품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스페인 정부는 1991년 그 노력을 인정해 이 지역에 최고 등급 원산지 통제 규정(DOCa) 인증을 내렸다. 이 인증은 품종, 재배방식, 밭 입지 등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받기는 어렵지만, 한번 인증을 받으면 어느 정도 품질이 보증된 와인이라는 증표가 된다. 현재 스페인에서 이 인증을 받은 지역은 리오하와 바르셀로나 인근 프리오라트 단 두 곳이다.

그래픽=정서희

긴 호흡으로 품질을 추구한 결과, 리오하 와인은 안정적인 산업 기반을 구축했다. 도시로 떠났던 청년들은 대학에서 와인을 전공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었다. 리오하 인구는 2000년 27만3800명에서 2020년 31만5900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전형적인 소박한 스페인 농촌임에도 마을마다 활기가 넘친다.

꼬또 데 이마스 그랑 리제르바는 리오하 생산자들이 품은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와인 중 하나다. 이 와인을 생산하는 엘 꼬또 데 리오하는 1970년 스페인 산업은행과 와인 업계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설립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이들은 설립 초기부터 수익 상당 부분을 설비와 포도밭, 질 좋은 참나무통 구입에 투자했다.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품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었다.

그 결과 엘 꼬또 데 리오하는 2016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와인 경진대회(IWSC)에서 ‘올해의 스페인 와인 생산자’로 뽑혔다.

꼬또 데 이마스 그랑 리제르바는 이 와이너리에서 가장 오래 숙성해 선보이는 와인이다. 와인은 포도 품종이나, 양조 기법에 따라 마시기 좋은 시기가 다르다. 보통 시중에서 판매하는 5만원 이하 와인은 지금 바로 마시기 적합한 경우가 많다. 와인을 오래 묵히려면 그만큼 양조 단계부터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타닌과 알코올 도수, 당도를 섬세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 와인은 미국산 참나무통에서 최소 24개월, 이어서 병에 넣은 후 36개월 이상 묵히는 긴 여정을 거친다. 총 5년 이상 숙성 과정은 와인에 깊이와 복합성을 부여한다.

인내의 미학이 돋보이는 이 와인은 2019년 권위있는 와인 매체 디캔터가 주최한 세계 와인 어워드(DWWA)에서 최고 와인상을 받았다. 출품한 1만6534종 와인 가운데 상위 0.3%에 해당하는 영예다. 한 심사위원은 “이 와인은 단순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 낸 예술작품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이후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 와인은 한때 품절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꼬또 데 이마스 그랑 리제르바는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구대륙 레드와인에 수여하는 ‘베스트 오브 2025′ 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비노에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