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 브라운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와튼 스쿨 MBA, 현 니먼 마커스 이사회 이사, 현 ‘미적 지능 연구소(Aesthetic Intelligence Labs)’ 대표, 전 베인 앤드 컴퍼니 컨설턴트, 전 에스티로더 부사장, 전 칼라일그룹 매니징 디렉터, 전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북미 지역 회장, 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미적 지능(Aesthetic Intelligence)’ 저자 사진 폴린 브라운

“글로벌 시장에서의 K패션 성공은 브랜드 차별성과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는 제품 디자인뿐 아니라 브랜드가 말하는 스토리(이야기)와 브랜드가 만드는 경험을 통해서 적용된다.”

세계 최대 명품 회사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의 북미 지역 회장 출신인 폴린 브라운(Pauline Brown)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8월 16일 서면 인터뷰에서 K패션의 세계화를 위해 이같이 조언했다. 브라운 교수는 베인 앤드 컴퍼니(Bain & Company)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시작해, 글로벌 화장품 업체인 에스티로더(Estée Lauder)에서 부사장을 지냈다. 2012년 LVMH그룹에 합류하기 직전에는 칼라일그룹(Carlyle Group)의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로 소매 및 소비자 부문의 바이아웃(구매)을 전담했다. LVMH그룹에선 2015년까지 북미 지역 회장으로 근무하면서 패션, 주얼리(보석), 화장품, 와인, 선택적 소매(selective retailing) 등 5개 부문에서 70개 브랜드에 대한 관리를 총괄했다. 이후 2016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자리를 옮겨 ‘미학의 비즈니스(The Business of Aesthetics)’를 가르쳤고, 2019년 쓴 ‘미적 지능(Aesthetic Intelligence)’이라는 책은 글로벌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브라운 교수는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브랜드 매력을 높이기 위해 제품뿐 아니라 매장 디자인, 광고 캠페인, 런웨이 쇼를 통해서도 스토리텔링과 고객 경험 창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며 “브랜드 성공의 진짜 비결은 하이엔드(High end·비싼 제품)냐 로엔드(Low end·저렴한 제품)냐에 달려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세계 무대에서 K패션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의 패션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대중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한국의 영향력은 최근 몇 년간 특히 뷰티, 음악, 영화(드라마)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K패션의 등장은 한국 음악의 인기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K팝의 인기는 실제 음악보다 뮤지션의 매력과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케이팝이 힙합, R&B, 일렉트로닉 같은 다양한 음악 장르의 융합인 것처럼 K패션은 다양한 스타일의 스트리트웨어, 레트로 스타일, 아방가르드(예술 분야의 혁신적 운동) 스타일을 결합하고 있다.”

─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K패션 브랜드가 있다면.

“세계 무대에서 브랜드 파워를 빠르게 높이고 있는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있다. 예를 들어 99%is, 서현, 우영미, 앤더슨벨, 아더에러, 강혁, 미스소희, 포스트아카이브팩션이 대표적이다. (이 브랜드들을)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 주목하고 있다. 사실 최근 쿠튀르 쇼에서 발렌티노는 분명히 한국 디자이너 김민주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본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부티크 중 하나는 로스앤젤레스(LA)의 H. Lorenzo인데 많은 대형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의상들이 이 부티크에서 공급받은 것이다. H. Lorenzo의 오너는 많은 옷을 일본에서 가져오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고 들었다. 가수 비요크(Bjork)의 패션 스타일리스트인 에다 구드문스도티르(Edda Gudmundsdottir)도 한국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많이 한다. 사실, 그녀는 최근 비요크의 최신 앨범 의상에서 백자수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했다. 확실히 한국 디자이너들은 세계 무대에서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나는 그 추세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음악이나 콘텐츠 등 문화적 영향력 확대가 패션 산업 시장 확대에 도움이 되나.

“음악이나 드라마 같은 문화적 영향력 확대는 패션 산업 시장 확대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음악과 패션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LVMH그룹의 오너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최근 루이비통이 패션 하우스가 아니라 ‘문화의 집’이라고 말했다. 동일한 철학이 모든 최고의 브랜드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나이키와 코카콜라도 강력한 사회·문화적 운동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 세계 무대에서 K패션도 루이비통처럼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있겠나.

“가능하다. 이미 아이웨어(eyewear) 분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안경은 의류, 핸드백 같은 다른 카테고리와 마찬가지로 패션을 반영한다. 한국 브랜드인 젠틀몬스터는 세계에서 가장 탐내고 영향력 있는 아이웨어 브랜드가 됐다. 젠틀몬스터 제품은 대부분의 고급 패션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글로벌 패션 커뮤니티 내에서도 엄청난 추종자를 모았다.”

─ K패션 브랜드가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성공 사례가 있다면.

"한국의 많은 대형 브랜드는 의류 디자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아직 제품 컬렉션을 넘어선 브랜드를 구축하지는 못하고 있다. 샤넬 같은 브랜드의 가치는 단순히 옷이나 향수 같은 제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깊고 풍부한 브랜드 코드(Code)에서 나온다. 브랜드 코드는 판매 가능한 제품과 구별된다. 이것은 브랜드의 미적 철학을 나타낸다. 브랜드 코드는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고객과 깊은 관계를 형성한다. 샤넬은 두 개의 겹친 C 자 문양, 동백꽃, 블랙 퀼팅 가죽, 르사주 트위드 패브릭, 인조 진주 같은 강력한 브랜드 코드의 예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샤넬만의 브랜드 철학을 표현한다.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하는 것은 그들의 창의성을 옷을 넘어 확장하라는 것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모든 측면으로 확장해야 한다."

─ 당신의 저서 ‘미적 지능(Aesthetic Intelligence)’에서 샤넬 립스틱을 바르고 나이키 신발을 신는 이유가 품질 때문만이 아니고, 다른 뭔가가 있는데 이것이 ‘미학’이라고 이야기했다. 책에선 미학을 사람들이 여러 감각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경험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관점에서 K패션의 성공을 위해 조언한다면.

"미적 지능은 미학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이고, 이는 교육을 통해 배양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일종의 '근육'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근육을 키우고 유지하기 위해선 운동이 필요하다. 최고의 운동선수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듯이 패션 디자이너에게 미적 지능은 창의성과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학교(교육기관)는 이러한 특정 근육을 개발시킬 준비가 돼 있지 않다. 학교는 일반적으로 지식과 개념 습득을 강조한다. 대조적으로 패션 사업에선 상상력이나 혁신 같은 다른 능력이 요구된다. 수년간 나는 미국 뉴욕에 있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이사직을 맡았다. 이곳의 최고 학생 중 상당수는 한국인이었다. 확실히 한국인은 재능이 많다. (K패션이 성공하려면) 문제는 그러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선 한국 자체의 학교(교육) 시스템 내에서 미적 지능을 배양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 패션 산업은 마케팅 전략이 중요하다. K패션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럭셔리 전략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전략 중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하나.

“먼저 럭셔리와 미학(사물을 인지하고 경험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은 동의어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애플이나 유니클로처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디자인된 브랜드들도 여전히 대중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중요한 건 제품 가격 전략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브랜드의 차별성과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다. 아디다스나 로레알 같은 비럭셔리 브랜드도 (차별성과 매력 극대화를 위해) 많은 리소스(자원)를 사용하고 있다.”

─ K패션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모든 패션 브랜드의 가장 큰 위험은 결국 유행을 타게 된다는 것이다. 패션은 왔다가 사라진다. 최고의 브랜드는 패션을 넘어 진화한다. 패션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은 여기서 결정된다. 루이비통은 가장 화려한 패션쇼를 개최하지만 기성복 사업은 전체 매출의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 매출의 대부분은 옷이 아니라 핸드백 판매에서 나온다. 마찬가지로 랄프 로렌은 패션 브랜드가 아니다. 패션을 통해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한다. 에르메스는 패션을 판매하지 않고, 장인 정신을 판매한다. Bathing Ape 같은 젊은 브랜드도 스트리트웨어를 판매하지 않고, 거리 문화를 판매한다.

따라서 K패션 브랜드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질문은 지금 의류나 액세서리 같은 제품 외에 다른 무엇을 판매하고 있는가로 귀결된다. 나는 K패션의 특징은 재미와 유쾌함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K패션 브랜드는 패션을 파는 게 아닐 것이다. K패션 브랜드들이 파는 건 기쁨(joy)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