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음식, 편의점에서도 가능할까?”
편의점 도시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저렴하고 간편하지만 나트륨 함량이 높고, 기름진 음식이라는 게 그것이다. 세븐일레븐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건강한 도시락’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저속노화 트렌드를 담은 ‘통곡물 도시락’을 출시한 것이다.
해당 제품 개발을 주도한 유은미 세븐일레븐 상품기획팀 MD(상품기획자)를 지난 11일 서울 강동구 본사에서 만났다. 유 MD는 “이 기획의 시작은 ‘편의점에서도 건강한 음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고민 끝에 최근 불고 있는 저속노화 열풍을 편의점에서도 구현해 보자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최근의 저속노화 열풍은 정제곡물과 단순당 섭취를 줄이는 저당·저염식단으로 ‘느리게 늙기’를 실천하고 있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주도했다. 유 MD는 지난해 8월 정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고, 수차례의 미팅을 거치면서 저속노화의 비법을 이식받았다.
유 MD는 “고나트륨, 고열량이란 편의점 도시락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며 “이런 고민 중에 정 교수가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해 건강한 식단을 강조하는 것을 보았고, 관련 저서를 접하면서 협업이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협업 요청 전화를 드렸을 때 흔쾌히 수락해 바로 미팅을 거치며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며 “정 교수가 제시한 기준을 지키기 위해 6개월의 개발 기간 중 30회 이상의 테스트를 거치며 이를 맞춰나갔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와 협업해 지난달 세븐일레븐이 출시한 제품은 ▲닭가슴살 스테이크 도시락 ▲더커진 닭가슴살 잡곡밥 삼각김밥 ▲홀그레인 머스타드 닭가슴살 김밥 ▲닭가슴살 잡곡 샌드위치 ▲렌틸콩 유부초밥&에그 샐러드 등 5종이다. 기존 편의점 도시락은 자극적인 맛이 강하고, 식사 후 졸음이나 붓기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속노화 도시락은 다르다는 게 유 MD의 설명이다. ‘렌틸콩 전도사’라 불리는 정 교수와 협업한 상품답게 ‘렌틸콩 섞은 잡곡밥’이 기본 베이스가 됐다.
나트륨 함량은 일반 상품 대비 최대 50%까지 줄였다. 편의점 도시락의 평균 나트륨 함량이 1400㎎ 가량인데, 닭가슴살 스테이크 도시락은 나트륨 함량이 590㎎가량으로 절반 이상 적다. 한 끼 만으로 세계보건기구(WHO) 하루 나트륨 권장 섭취량(2000㎎)에 근접하는 기존 편의점 도시락보다 건강에 부담이 덜하다. 유 MD는 “개발팀 내부에서 계속 시식한 결과 확실히 몸이 가벼운 느낌을 받았다는 반응이 많았다”면서 “시식 후에 혈당 스파이크로 인한 졸린 느낌 등이 없었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도시락에는 쓰인 적 없는 ‘렌틸콩 잡곡밥’을 조리하면서도 식감을 유지하는 것이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일반 백미밥은 불리고 취식하는 과정이 간단하지만, 잡곡밥의 경우 현미와 렌틸콩, 백미를 각각 따로 불려야 식감을 유지할 수 있어 과정이 복잡했다. 유 MD는 “잡곡밥을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콩과 현미의 식감”이라면서 “렌틸콩이 너무 딱딱하면 거부감이 들고, 너무 불리면 밥과 함께 으깨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소와 협업해 샘플링 테스트를 30번 진행하며 최적의 식감을 찾았다”고 했다.
저속노화 트렌드 제품의 가격은 닭가슴살 스테이크 도시락 기준 6500원으로, 자사 일반 도시락과 비교해 10~20%가량 비싸지만 가격만큼의 퀄리티도 보장했다고 유 MD는 강조했다. 그는 “통닭가슴살을 사용하고 렌틸콩과 현미 등 잡곡을 섞다 보니 원가율이 높아 가격이 일반 도시락보다 높지만, 그에 걸맞은 품질을 갖췄다”고 했다.
세븐일레븐은 경쟁사인 GS25나 CU와의 차별화 키워드로 ‘건강’을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더 많은 소비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건강한 도시락 라인을 확장할 예정이다. 단순히 건강을 강조하는 제품이 아니라, 일반 도시락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대체당, 저나트륨, 고단백 식단 등의 요소를 포함한 신제품을 기획하고 있다.
유 MD는 “이전에는 ‘건강한 음식은 편의점에서 만들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도전해 보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도 건강한 편의점 음식을 확대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