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블록체인, 대체불가토큰(NFT), 메타버스(Metaverse) 등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웹 3.0 시대가 도래하면서 유통산업에도 변화가 일 조짐이다. 조선비즈는 메타버스 시대가 가져올 유통산업의 변화를 진단하고, 효과적인 고객경험(CX) 확장 전략이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편집자 주]
미국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 내에 ‘월마트 랜드’와 ‘월마트 유니버스 오브 플레이’ 등 2개의 가상 공간을 구축했다. 이곳에서 이용자들은 다양한 게임과 음악 축제를 즐기고 가상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월마트가 로블록스에 진입한 이유는 차세대 쇼핑객인 Z세대(200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세대) 쇼핑객을 만나기 위해서다. 올해 2분기 로블록스의 일일 활성 사용자(5220만 명) 중 4분의 1은 13세 미만이었다.
윌리엄 화이트 월마트 마케팅 책임자(CMO)는 “월마트는 메타버스와 그 이상의 다른 움직임을 고려하기 때문에 로블록스를 시험장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유통업계도 메타버스가 화두다. CU, 이마트(139480), 현대백화점(069960), 에버랜드 등 국내 유통기업들도 메타버스 플랫폼에 매장이나 체험 공간을 열고 고객과 소통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메타버스 시대가 열린다
메타버스란 초월·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과 연동된 3차원의 가상 세계를 뜻한다.
메타버스 사업자인 로블록스는 지난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붐을 주도한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고 메타버스로 돈을 벌겠다고 선언할 만큼 성장 잠재력이 주목받고 있다.
업체마다 예상치는 다르지만, 대부분 시장의 성장을 낙관하고 있다. 딜로이트는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작년 기준 1220억 달러(약 174조원) 수준에서 2025년까지 3000억 달러(약 427조원) 수준까지 성장하리라 전망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2020년 4787억 달러(약 569조원)에서 2024년 7833억 달러(931조원)로, 모간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메타버스가 소셜미디어(SNS)와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게임 플랫폼 등을 대체하며 무려 8조 달러(약 1경1432조원) 시장을 형성할 거란 관측을 내놓았다.
메타버스가 뜬 이유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소통과 체험을 하려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장기간 비대면 생활이 지속되면서 체험의 욕구를 풀 수 있는 가상공간이 주목받았다.
가구점에 가는 대신 이케아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증강현실(AR)로 주거공간을 인테리어 해보고 주문하는 식이다. VR이나 가상현실(AR) 등을 활용한 접근 방식은 소셜미디어(SNS)보다 더 몰입감을 높여준다.
미래 소비 주역인 Z세대를 중심으로 메타버스 이용자가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는 이유다. 포트나이트, 로블록스, 제페토 등 주요 메타버스 서비스 가입자는 각각 2억~3억 명으로, 10대가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실과 가상의 융합으로 새로운 가치 창출
메타버스는 새로운 인터넷 담론인 웹 3.0을 기반으로 한다. 웹 1.0(1990~2004년)이 읽기 전용 콘텐츠만 사용할 수 있었던 인터넷 보급 시기의 모델이라면, 웹 2.0은 웹페이지와 사용자 생성 콘텐츠가 결합한 형태다.
웹3.0은 컴퓨터가 시맨틱 웹(Semantic web·차세대 지능형 웹) 기술을 이용해 웹페이지에 담긴 내용을 스스로 이해하고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능화 개인화된 맞춤형 웹을 뜻한다.
딜로이트는 디지털 정보가 물리적 세계와 통합된 공간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웹 3.0을 ‘공간 웹(Spatial web)’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현실과 같은 3D 공간의 인터넷 환경에서, 현실과 같은 소통이 가능한 가상 공간이 되라는 관측이다.
가상과 현실의 상호 생성은 메타버스의 핵심 특징이다. 향후 메타버스는 현실 경험을 디지털화(digitalization)를 구현하기 위해 현실 세계에서 가상 세계로 발전함과 동시에, 디지털 경험을 현실화(actualization)하기 위해 가상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도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중자아’ 가진 소비자, 메타버스 시대엔 입체 분석 가능해
현재 메타버스 산업은 초기 단계로 간주된다. 그러나 최근 주요 사업자들이 AR·VR 기기를 강화하는 등 몰입형 미디어 환경을 만드는 인프라에 투자하는 추세여서 성장에 속도가 붙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그런 만큼 기업들엔 메타버스 시대 맞는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CX)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 시대의 고객은 ‘이중자아(Double Ego)’ 성향이 강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실 세상과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세상, 아바타라는 부캐(부가 캐릭터)를 앞세운 메타버스 세상에서 고객은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김태환 한국딜로이트 디지털 리더(파트너)는 “과거엔 기업들이 이런 고객을 이해하는 게 제한적이었으나, 메타버스에선 고객들을 직접 관찰하고 패턴을 데이터화해 분석할 수 있다”라며 “고객들의 데이터를 활용해 특정 상품을 출시할 때 메타버스 세상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 반응을 미리 점쳐볼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거래 처리 방식도 달라질 전망이다. 대체불가토큰(NFT)을 활용한 상거래가 대표적이다. NFT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가상의 자산에 부여되는 토큰으로, 자산으로서 유무형의 상품이나 예술작품, 서비스 등을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다.
독일 스포츠 의류·용품업체 아디다스는 지난해 12월 유명 NFT 커뮤니티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 클럽(BAYC)’과 협업해 ‘인투 더 메타버스’라는 NFT를 발표해 단 몇 초 만에 27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세계 최대 스포츠 의류·용품업체 나이키는 NFT 판매만으로 약 1억8500만 달러(26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신세계백화점이 자체 캐릭터 ‘푸빌라’ NFT 1만 개를 완판하고, 롯데홈쇼핑도 자사 캐릭터 ‘벨리곰’ NFT 9500개를 1초 만에 매진하는 등 NFT 도입이 활발한 추세다.
탈중앙화와 자율성이 강조되는 만큼 고객을 집객하고 충성도를 높이는 방식도 달라질 전망이다. 기업들은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브랜드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커뮤니티와 팬덤을 만들 수 있도록 하나의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전작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에서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쓰는 디지털 신인류의 등장을 조명한 최재붕 성균관대 서비스융합디자인학과 교수는 최근 저서 ‘메타버스 이야기’에서 “산업 생태계의 전환이 늦어지면 디지털 신대륙의 진출 경쟁에서 당연히 뒤처지게 된다”고 했다.
최 교수는 “과거처럼 ‘세계 최초’ 기술로 성공하는 게 아니라 애플이나 테슬라처럼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시켜 ‘좋은 경험’을 제공해야 성공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메타버스 기술을 빨리 도입하는 것보다,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파트너도 “AR, VR 기술이 발달하면서 몰입도 높은 경험이 가능해졌지만, ‘고객이 브랜드에서 물건을 고르고 산다’는 근본적인 개념은 절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들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방식을 기업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와 어떻게 연결해 해결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