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최근 공개한 ‘57조원 짜리 투자 계획’의 핵심은 오프라인 매장이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위축됐던 유통 분야 중에서도 오프라인 백화점 신설 또는 리뉴얼(재단장)을 위한 투자를 우선순위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국내 백화점들이 체험형 콘텐츠와 상품 경쟁력 강화로 고급화하는 가운데, 각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만한 ‘매장 초대형화’와 ‘고급화’가 매출 상승으로 직결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형 백화점 신설·보완하는 신세계, 수서역 환승센터 집중
일단 신세계는 오프라인 사업에 향후 5년 간 11조 원을 투자키로 했다. 이 가운데 3조9000억원이 백화점 사업에 쓰인다. 대규모 점포를 신설하고 기존 점포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기 위한 비용이다. 이 중 대부분은 수서역 환승센터에 위치하는 신설 점포 개발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신세계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백화점 사업(점포 신설 및 보완)에 총 1조1331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이를 2조996억원으로 늘렸다. 연도별 예상 투자액은 올해 7249억원을 시작으로 2023년 7442억원, 2024년 6305억원이다.
투자금이 두 배 수준으로 뛴 건 점포 신설 계획을 확대한 결과다. 실제 신세계는 3년 간 백화점 신설과 관련된 투자 총액을 5429억원에서 1조3462억원으로 증액했다. 핵심 상권에 초대형 신규 백화점을 건설해 수익을 확대하고, 기존 점포를 리뉴얼해 성장 동력을 추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세계가 국내 백화점 대형화의 불을 당긴 시점은 2016년이다. 당시 개점 16년을 맞이한 강남점은 본관 증축과 전관 리뉴얼 공사를 거쳐 ‘서울 최대 백화점’으로 재탄생했다.
영업면적만 기존 5만5500㎡에서 8만6500㎡로 늘리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했다. 온라인 활성화로 백화점 업계의 ‘매장 규모 줄이기’가 한창이던 분위기와 상반되는 선택이었다.
그 결과 2019년 강남점은 연매출 2조원을 달성했다. 신세계는 이를 계기로 백화점 대형화에 속도를 내 지난해 8월 대전신세계도 개점했다.
대전점 실적과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기대감까지 더해져 올 1분기 백화점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은 18.7%, 47.6% 증가한 5853억원, 1215억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기존 점포 리뉴얼은 고급화에 방점을 찍었다. 신세계 경기점은 최근 1년 8개월에 걸친 핵심 매장(지하 2층~지상 7층) 리뉴얼을 마무리하고, 2차 공사(지상 8~10층)에 돌입한다.
이로써 경기점은 업계 최초 2개층(지하 1층~지상 1층)에 걸친 명품·화장품 전문관을 구축했다. 영업 면적만 3600여 평에 달한다.
여기에는 보테가베네타·발렌티노·막스마라·멀버리·로에베·필립플레인·메종마르지엘라 등 럭셔리 브랜드가 대거 입점했고, 기존 1층에 있던 루이비통 매장은 면적을 2배로 확장해 지하 1층으로 옮겼다.
구찌 남성 전문매장도 들어섰다. 구매력을 갖춘 3040 인구의 지속적 유입을 고려해 명품 부문을 대폭 강화한 전략이다.
◇롯데 ”1등 되찾자” 기존점 고급화와 복합몰 신설에 방점
롯데는 ‘1등 백화점 탈환’을 노리고 있다. 핵심은 소공동 본점 및 잠실점 리뉴얼을 비롯한 핵심 점포 리브랜딩이다.
기존 백화점의 물리적 공간 대형화보다는 대중적인 이미지에서 ‘고급 매장’으로 이미지를 전환하는 데 무게를 뒀다. 매출 상위권에 드는 점포의 재탄생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전략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24일 발표한 5개년 투자 계획안에서 8조1000억원을 유통사업군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롯데마트 리뉴얼(약 1조원) 비용과 온라인 유통 부문 등을 제외하고 최대 5조원 가량이 오프라인 백화점 리뉴얼 및 복합 쇼핑몰 개발에 쓰일 전망이라고 롯데지주 측은 밝혔다.
올해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롯데쇼핑(023530)은 매출증대를 목표로 오는 2024년까지 백화점에 총 2조3791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연도별 예상 금액은 올해와 내년에 각각 4376억원과 9683억원, 2024년 9732억원이다.
지난 2019년부터 시작한 소공동 본점 리뉴얼 작업은 올해 말 마무리할 계획이다. 명품 부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럭셔리 브랜드 입점을 대폭 늘렸다.
특히 1·2층과 지하 1층 명품 매장은 세계적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컨설팅까지 받아 재단장 중이다. 약 40년 간 매출 1위 점포였던 본점이 지난 2017년 신세계 강남점에 1위를 내어주는 등 매출 감소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신규 백화점 건설을 추진하는 신세계와 달리 롯데백화점은 대규모 복합몰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오프라인 시장이 오락·쇼핑·숙박을 동시에 즐기는 체류형 복합공간으로 변하는 추세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롯데쇼핑은 지난 2013년 구매한 서울 마포구 상암동 부지와 인천 송도에 고용 효과가 높은 복합 쇼핑몰을 개장할 예정이다. 목표 시기는 2025년이다. 상암 복합몰은 ‘서울 서북상권 최대 쇼핑몰’, 롯데몰 송도점은 ‘도심 속 리조트형 쇼핑몰’을 목표로 설계했다.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 속에 롯데 역시 1분기 백화점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7400억원, 10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4%, 2.6%씩 증가했다.
앞서 신규 사업과 관련해 자회사 4개(롯데인천개발·롯데타운동탄·롯데송도쇼핑타운·롯데쇼핑타운대구)를 합병하며 취득세 161억원이 일시적으로 발생했으나 영업이익은 오히려 늘었다고 롯데백화점은 밝혔다.
◇가성비는 온라인, 고급 서비스 체험은 오프라인...“고객 수요 다변화”
이러한 백화점 업계의 대형화 및 고급화 전략은 소비자의 ‘수요 다변화’와 맞닿아 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상품 소비의 경우 온라인을 통한 가성비를 추구하는 한편, 오프라인에서는 ‘고급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욕구가 나란히 부상했다는 것이다.
구진경 산업연구원(KIET) 서비스미래전략실장은 “백화점이 상품 소비의 공간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파는 것보다 사람이 모이도록, 또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것이 수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오프라인 매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구 실장은 “대형 유통업체들의 온-오프라인 투자는 대립적인 양자 선택의 개념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크고 고급스러운 백화점 매장이나 복합 쇼핑몰에서 음식과 오락, 서비스 등 즐길 거리를 체험하는 것은 ‘가성비 구매’에 중점을 둔 온라인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수요”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