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배달 전문 분식점을 운영하는 김상호(36)씨는 최근 폐점을 고민중이다. 배달의민족(배민),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을 모두 이용하지만, 배민 등에 광고비와 주문에 따른 수수료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배달 앱에 들어온 음식점들이 늘면서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매달 광고비를 지출하고 있는데, 중개 수수료마저 꾸준히 오르고 있다”면서 “배달비를 고객 부담으로 돌리는 등 대책을 강구해 봤지만, 주문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배달 시장 규모가 23조원을 훌쩍 넘어선 가운데 정작 배달 앱을 이용하는 음식점주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 앱 3사가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신규 서비스 출시, 마케팅 프로모션 등 소요 비용을 광고비와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음식점주에 전가하고 있어서다.
소비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주문을 음식점으로 연결하는 배달 앱이 중개 수수료와 광고비 등을 올리면서 음식점주는 최소 주문 금액, 배달비라는 이름으로 재차 소비자에게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과도한 배달비, 넘치는 배달 쓰레기 등으로 인한 배달 거부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이대로는 배달 시장이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 2010년 25만원이었던 광고비 80만원 이상으로 늘어
음식점주가 배달 앱에 내는 중개 수수료, 광고비 등 비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 배달 앱 시장 1위 배민은 2010년 서비스 출범 초기 음식점 한 곳이 월평균 약 25만원을 광고비로 지불했지만, 지난해 기준 88만원 이상을 광고비로 내고 있다.
광고비가 늘어난 이유는 ‘수수료 제로’를 선언한 배민이 수수료 대신 광고비 개념인 ‘깃발’을 구매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 포함 월 8만8000원 수준인 깃발을 구매한 음식점주는 2㎞ 반경 소비자에게 상호가 노출되고 배달 주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깃발이 적으면 상호가 화면 하단으로 내려가 음식점주는 평균 10개 깃발을 매달 구매하고 있다.
수수료를 부담하는 서비스도 새로 출시했다. 지난해 6월 단건배달 서비스 ‘배민1′을 시작한 배민은 주문 중개 수수료 12%를 꺼냈다. 배민1은 배달 기사가 3~5건 배달을 한번에 하는 대신 1건만 수행해 배달 시간을 줄인 서비스다. 이 경우 12% 중개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배달 배달비 역시 6000원으로 책정해 음식점주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됐다.
요기요도 중개 수수료를 변경했다. 요기요는 2020년 말 요기요 익스프레스 출시 초기 가맹점 혜택 프로모션으로 제공했던 중개 수수료 체계 ‘7%+1000원(배달비)’를 종료하고 ‘12.5%+2900원’으로 전환했다. 음식 가격이 2만원인 경우 기존 2400원을 지불하면 됐지만, 5400원으로 125% 증가했다.
서울시 동작구에서 한식 음식점을 운영하는 임이재(45)씨는 “예전엔 한 달에 2000만원을 열심히 팔면 700만원 정도는 가져갈 수 있었는데 요샌 똑같이 팔아도 200만원만 갖고 간다”면서 “광고비·수수료·배달대행료가 매출의 20% 수준으로 올랐고, 여기에 재료비와 포장비, 임대료까지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 적자 커진 배달 앱…중개 수수료 등 비용 전가 확대
배달 앱의 주도권 확보 출혈 경쟁은 광고비·수수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배달 앱들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야 승산이 있다고 본다.
2019년 하반기 쿠팡이츠 등 등장으로 배달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배민은 광고, 마케팅비, 라이더 프로모션비 지출을 확대, 4년 만에 364억원 적자로 전환했다. 지난해 배민 적자는 5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수수료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배민은 올해부터 배민1에 적용했던 중개 수수료 1000원 고정 프로모션을 기존 90일에서 30일로 축소하기로 했다. 음식점주들은 배달의민족이 내년부터 프로모션을 종료하고 정식 요금인 ‘중개 수수료 건당 12%, 배달비 6000원’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쿠팡이츠도 지난 2019년 5월 서비스 출범부터 운영하던 입점 업체 대상 프로모션을 종료한다. 쿠팡이츠의 정상 주문중개 수수료는 15%이고, 배달비는 주문 건당 6000원이다. 하지만 프로모션을 통해 입점 업체들은 주문중개 수수료는 건당 1000원, 배달비는 5000원만 부담하면 됐다. 쿠팡이츠는 내달 3일부터 중개 수수료를 7.5~15%(배달비 포함 시 27%)로 변경한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경영학과 교수)은 “배달 앱들은 ‘치킨게임’으로 보일 정도로 외연을 확장해 왔다”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자 중개 수수료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비용 전가를 시작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 배달 시장 공멸 우려…비용, 쓰레기 부담에 소비자 떠난다
일각에선 이대로라면 배달 앱 시장이 공멸할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내놓고 있다. 중개 수수료·배달비 확대 속에 아무도 이득을 보지 못하고 있어서다. 적자에 빠진 배달 앱의 비용 전가 속에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비용도 치솟고 있다. 중개 수수료와 배달비를 별도로 부담해야 하는 음식점주가 배달 음식 가격을 올리고 고객 부담 배달비를 높이고 있어서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수도권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배달앱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82.8%가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주문한다고 답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기 위해 원래 시키려던 양보다 많은 음식을 주문하면서 금전적인 부담도 커졌지만, 음식물·일회용품 쓰레기 증가 등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도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소비자는 배달기사에게 지급되는 배달료와 무관하게 식당이 책정한 배달료만 내면 되지만, 장기적으론 소비자에게 (부담이) 돌아올 것”이라면서 “(배달 앱이) 배달 기사를 확보하기 위해 배달료를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수수료 인상 등으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고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탈(脫) 배달 움직임도 일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에 ‘우리는 배달 앱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배달거부’ ‘배달거절’ 등 문구를 올리는 식이다. 직장인 김이랑(35)씨는 “과거에는 배달 앱을 자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매장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한다”면서 “필요한 만큼 살 수 있어 버리는 음식과 쓰레기도 적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