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마천동에 12일 문을 연 ‘CU X 하나은행’ 마천파크점 외관. / BGF리테일 제공

12일 문을 연 오후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한 편의점. 과자와 음료, 삼각김밥 등이 진열된 익숙한 편의점 풍경 옆으로 ‘스마트 셀프존’이라 적힌 공간이 눈에 띄었다. 은행 창구 업무를 볼 수 있는 하나은행 종합금융기기 STM(Smart Teller Machine)이 설치된 공간이다. 커피를 사러 왔다는 주민 노일권씨(49)는 “여기 편의점 맞죠?”라고 물었다.

국내 1위 편의점 CU 운영사 BGF리테일(282330)이 편의점 매장 안에 은행을 열었다. BGF리테일의 점포 운영 효율화 부서인 CVS랩이 하나은행 채널혁신팀과 손잡고 개설한 점포로, 간판에 하나은행의 이름(CU X 하나은행)까지 내걸었다. 최근 편의점 업계가 일상 서비스로의 확장을 목표로 은행과의 협업에 나서고 있지만, 은행 창구를 아예 편의점 매장 안으로 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편의점 공간 일부는 대기 공간까지 갖춘 은행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장 왼쪽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공간이 눈에 띄었다. 통장 개설, 체크카드 발급 등을 위해 찾는 은행 대기 공간과 닮아 있었다. CU X 하나은행 매장 운영 담당인 박준하 주임은 “기존에 마천동에서 운영하던 CU마천파크점을 전면 재단장했다”며 “총 50평 매장 공간 중 12평을 하나은행의 별도 공간으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대기 공간을 지나자 각각 1대씩 설치된 STM과 현금지급기가 보였다. STM은 작은 방인 스마트 셀프존에 설치됐다. 스마트 셀프존에 들어가 상담원 연결을 누르자 하나은행 직원이 화면에 등장했다. 화상으로 연결된 상담원은 “하나은행 영업점을 방문해야 처리할 수 있었던 통장 개설 등 50가지 넘는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하나은행 직원이 종합금융기기 STM을 이용한 화상 상담을 시연하고 있다. / 배동주 기자

CU X 하나은행 마천파크점 스마트 셀프존은 상담원 화상 연결이 필요한 일부 업무를 제외하면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업무 수수료도 일반 은행 365코너나 영업점에서 수취하는 것과 동일하게 책정됐다. 권혁준 하나은행 채널혁신섹션 팀장은 “편의점 안에 있는 숍인숍 형태의 은행이지만, 내부에 미니 가든을 조성하는 등 영업점 형태 구현에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유통에 금융이 융합된 CU X 하나은행 마천파크점은 주민 편의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점포 반경 500m 내에 하나은행을 포함한 은행 영업점은 물론 은행 365코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편의점을 찾은 노재용(가명·32)씨는 “제1금융권 은행 업무를 보려면 적어도 1㎞는 나가야 했는데 집 근처에 은행과 다름없는 편의점이 생겨 다행”이라고 말했다.

BGF리테일은 CU로의 하나은행 지점 입점을 넘어 서비스 결합도 추진하고 있다. CU X 하나은행 마천파크점은 올해 말까지 하나카드로 상품을 사면 5% 즉시 할인에 최대 5%의 CU 포인트 적립 혜택을 주는 개점 이벤트를 진행한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은행 업무를 위해 CU를 찾는 고객이 은행 업무 전후에 편의점을 이용하는 집객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편의점 집객효과 올리고 은행엔 점포 축소 대안

편의점 업계는 그동안 은행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택배, 보험, 타이어 교체, 세탁물 관리 등과 함께 소비자의 일상 업무를 편의점 안으로 끌어들여 집객효과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국내 편의점 업계 2위인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007070)은 지난 5월 신한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은행 지점이 적은 격오지와 도서지역 등에 금융 특화 편의점을 만들기로 했다.

BGF리테일과 하나은행이 금융 특화 지점을 열고 서비스 결합 할인 행사를 펴고 있다. / 배동주 기자

은행 입장에도 편의점과의 협업은 이익이다. 비대면 금융 서비스 확산에 따라 몸집 줄이기에 한창인 은행들이 대면 고객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데 편의점만큼 알맞은 파트너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은 올해 상반기에만 점포 90곳을 닫는 등 생존을 위한 축소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의 불편이 커지지 않도록 막겠다며 점포 폐쇄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편의점과 은행의 협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편의점은 접근성이 용이한 데다 대부분 24시간 문을 여는 일종의 오프라인 플랫폼”이라면서 “편의점과 은행의 협업은 금융당국 감시를 피할 수 있는 대안일 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앞세운 인터넷은행에 맞서기 위한 전략으로도 작동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