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 특별한 순간이 있다. 처음과 마지막은 유독 선명하게 남는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마주한 순간, 좋아하는 음식을 처음 맛본 기억 등. 처음의 찬란함은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다. 마지막이 남기는 여운 또한 깊다. 공항 출국장에서의 마지막 인사, 계절이 저물어가는 순간. 어쩌면 처음과 마지막은 변할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대개 추억은 그 두 가지 기억으로 인해 다르게 적힌다. 처음 혹은 끝, 아님 그 둘 다 좋았던 기억이었을 경우, 그려지는 것 또한 그 채색과 닮아있다. 반대로, 그 순간이 아팠다면, 그 기억의 색조도 달라진다.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처음과 끝은 그 순간보다 곱절의 무게로 마음에 새겨진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첫 코스가 만족스럽다면, 이어질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커진다. 반대로, 첫 음식이 아쉬우면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도 흔들린다. 마지막 역시 중요하다. 코스의 끝인사처럼 나오는 음식은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입안에 맴돌며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역할을 식사에서는 대개 ‘디저트’가 담당하고 있다. 처음에 나오는 아무즈 부쉬(한 입 거리), 코스가 끝난 후 제공되는 다과는 양은 적을지 몰라도 그날 미식의 ‘인상’을 결정짓게 해주는데 충분하다.
이번 봄을 맞이해 두 셰프가 새로운 디저트를 선보이기 위해 뭉쳤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디저트를 담당하고 있는 박주혜 과장과 JL 디저트 바의 저스틴 리 셰프가 바로 두 주인공이다. 두 셰프는 이번 봄의 ‘첫 순간’과 ‘마지막’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메뉴들을 구상했다.
두 셰프의 경력도 화려하다. 박 셰프의 경우 르 꼬르동 블루를 수료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 오게 된 것은 약 3년 정도. 여성 셰프로서 베이커리 파트 과장을 맡게 된 것은 그랜드 하얏트 서울로 처음이다. 저스틴 리 셰프는 한남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 건 디저트 바를 운영 중이다. 또한 지난해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라 리스트의 ‘Pastry Talent of the Year’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두 셰프는 봄의 계절감을 살리기 위해 자몽, 라임, 레몬 등의 재료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인다. 호텔의 특성상 클래식한 메뉴에 강점을 가진 박 셰프와, 보다 자유로운 스타일의 요리를 해온 저스틴 리 셰프는 서로의 장점을 이끌어내며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박주혜 (이하 박) 과장: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베이커리 파트 과장을 맡고 있는 박주혜다. 제빵에 대해 관심이 많아 관련 자격증도 몇 개 소지하고 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 오게 된 것은 약 3년 전이다. 제빵 부문에서 원래 일을 했어서 제과에도 그 부분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빵은 온도, 습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그런 세심한 부분이 있고, 제과는 화려해 보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간 이 둘의 장점이 돋보이는 제품들을 선보이고 싶다.”
저스틴 리 (이하 리) 셰프: “한남동에서 JL 디저트 바를 운영 중인 저스틴 리다. 지난해 페스티벌 오브 서울의 카페 분야 베스트 카페로 선정이 됐다. 같은 해 프랑스 라 리스트에서도 페이스트리 부문의 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해였다. 원래 10년 정도 이탈리안 음식을 해왔던 셰프기도 하다. 이후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면서 디저트에도 눈을 떴다. ‘요리’ 같은 디저트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보통 디저트 하면 단맛만 떠올리기 쉬운데, 하나의 요리처럼 다섯 가지의 미각을 충족시키는 제품을 만들려 한다. 따라서 버섯 같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재료도 쓰는 편이다.”
―제과의 매력은 무엇인가.
박: “디저트는 대개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날 식사에 대한 ‘끝인사’를 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입에 남은 그 맛을 지닌 채 돌아가는 것, 또 그 맛과 함께 식사가 어땠는지 떠올릴 수 있다는 부분도 벅차게 한다.”
리: “동감이다. 코스의 처음과 끝을 담당하는 것이 디저트 아닐까. 식사의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별 같다고도 생각한다. 전체 요리 대비 양은 적어 보일 수 있지만 말이다. (웃음)”
―베이커리, 요리 등을 통해 전하고 싶은 철학 등이 있나.
박: “보거나 맛을 줬을 때 희열을 주고 싶다. 맛 좋은 것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오지 않나. 그런 기쁨을 주는 것이 목표다. 또한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디저트로 색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다.”
리: “마찬가지다. 새로운 콘셉트를 만든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지만 보람차다. 따라서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협업을 요청했을 때 기뻤다. 이미 훌륭한 디저트로도 유명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또 배울 점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자면, 새로운 경험을 전달드리고 싶은 것이 가장 크다.”
―어떤 독특한 재료들을 사용해왔나.
리: “음식에 영감을 받아 디저트를 만들려고 한다. 최근에 강원도 더덕을 맛봤다. 더덕의 단맛 그리고 살짝의 텁텁함. 이 두 가지 특징을 살려서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음식에 영감을 받아서 만들고자 한다. 결국, 디저트도 하나의 음식이지 않나. (웃음)”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매력은 무엇인가.
박: “일단 경치가 좋다. 경치가 좋으면 먹는 맛도 난다. 또 호텔과의 인연은 이전 10여 년 전에 실습으로 왔었다. 당시 기억이 너무 좋아서 근처를 지나가게 되면 꼭 한 번씩 바라보게 되더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디저트도 맛이 좋다. 특히 정말 클래식, 전통적인 디저트의 맛을 느껴보고 싶으면 추천드린다.”
리: “나는 사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팬’이다. 각 호텔마다의 경치가 너무 좋다. 또 부산에서도 일을 잠깐 했었다. 그때 박 셰프님을 알게 됐다. 업계에서 사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기 힘든데, 박 셰프에게 감사하다.”
―이번 협업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린다.
박: “사실 그동안은 외국 셰프들과 협업을 해왔는데, 이번이 한국계 셰프와 처음 하는 협업이다. 그만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스틴 리 셰프와 함께 해 의미 있는 첫 단추를 잘 꿰게 된 것 같다. 프로모션 기간은 3월부터 6월 1일까지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갤러리에서 이용 가능하다.”
리: “마찬가지다. 이번은 봄의 계절감을 잘 살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2~3개월간 서로 열심히 노력한 만큼 기대해 줘도 좋다. 네이버로 편히 예약해 주시면 최고의 디저트를 준비하겠다.”
―이번 협업에서 주목해야 할 음식이 있다면 무엇인가.
리: “봄을 기다리는 3월, 봄을 보내는 5월까지의 서사를 담고 있다. 다만 봄이 주는 그 싱그러운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박: “서로 분업이 잘 맞아서 좋았다. 호텔의 팀워크와 리 셰프의 섬세함이 맞아서 더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분이 좋다. 평일은 코스, 주말은 뷔페 이후 티 타워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해 봤다.”
―메뉴에 대한 설명도 궁금하다.
저: " 첫 번째 메뉴는 자몽과 타피오카 펄을 사용했다. 또 와인을 이용한 커스타드와 얼그레이를 우려낸 자몽 소스가 조화를 이룬다. 봄의 싱그러움을 떠올릴 수 있는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메인 디저트는 꽃 모양의 타르트에 티무트(timut)라는 후추를 사용해 봤다. 이 후추는 레몬향이 난다. 후추의 알싸함과 레몬 껍질 맛이 나는 게 독특하다. 또한, 바닐라로 만든 젤라또를 타르트와 함께 제공한다.”
박: “호텔은 아무래도 정통 디저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치 과일과 장미 향이 나는 퓌레를 곁든 라운드 케이크를 먹어보길 추천한다.”
―메뉴에 대한 영감을 어떻게 받는가.
박: “디저트는 사실 시각적인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색감을 중요시한다. 미술 작품을 보는 등으로 감각을 넓히려 한다. 또한, 디저트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해외 셰프 등의 작품도 맛보기도 한다. 거기서 맛있었다고 느낀 것들을 내 스타일대로 배합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역동적인 맛을 추구한다. 입에 넣었을 때 활발하게 미뢰를 일깨우는 것들 말이다.”
리: “음식을 통해 받는다. 그래서 해외를 자주 나간다. 거기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토대로 디저트를 재현하고 있다. 가령 이번 밸런타인 초콜릿 컬렉션도 그렇다. 각 초콜릿은 도쿄, 쿠알라룸푸르 등 도시의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 도시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을 디저트로 구현하려 했다.”
―셰프로서의 좌우명이 궁금하다.
박: “맛과 정성은 비례한다. 음식은 거짓말을 못한다. 손이 한 번 더 가면 더 맛있어진다고 믿어 정성을 담으면 고객들도 알 것이라 믿는다.”
리: “일할 때는 묵묵히 하자. 우스갯소리로 직원들에게 보여주는 영상이 있다. 그냥 조용히 일을 빨리 끝낼 것에 집중하자는 내용이다. 물론 진심이기도 하다. (웃음)”
―자신의 인생과 닮은 음식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 “파이. 파이는 각 온도나 만드는 방법에 따라 그 안에 있는 기공도 달라지고 모양도 그렇다. 인생은 항상 계획을 해도 그대로 풀려가지 않는데, 그게 파이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리: “‘바바 오럼(Baba Aurum)’이라는 디저트를 가장 좋아한다. 달콤한 브리오쉬를 럼이 들어간 시럽에 담가서 불린다. 향도 매우 달콤하지만 씁쓸한 맛도 난다. 인생이 그러하다. 쓰고 달고 또 달거나 쓰고.”
―마지막 한 마디 부탁드린다.
박: “각박한 삶 속, 한 조각의 여유를 드리고 싶다. 달콤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언제든 찾아주시라.”
리: “많이 드셔봐 달라. 이 한 점을 위해 박 셰프와 3개월 이상을 준비했다. 만족스러운 표정 한번 지어주면 더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