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현대차그룹 정몽구 당시 회장이 현대제철 홍보팀 신설을 지시한다. 그룹이 한보철강 인수전에 뛰어들며 일관제철 사업에 5번째로 도전하던 때였다. 포스코라는 거대 철강 회사와의 일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획팀 소속의 저자가 홍보팀장으로 낙점되었다.
포스코와의 치열한 경쟁, 일관제철소 준공식 준비, 내외부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갈등 등 홍보팀장의 시각에서 현대제철 성장사가 숨가쁘게 흘러간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성장은 평탄한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돌풍과 암초, 망망대해의 여정 가운데 끈기와 전략이 돌파구를 만들어냈다.
한 홍보맨의 서사는 세계 10위 경제 강국이 된 대한민국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국 현대사의 한두 장면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100페이지쯤 읽으면, 제목에 붙은 ‘오디세이’에 수긍할 수 있다.
저자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 이른바 ‘진보 성향’의 인사다. 한국생태경제연구회, 환경운동연합 등과 교류하며 한때 ‘골프는 반환경적이고 귀족적인 스포츠’라는 인식을 가지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성향이 현대제철에 새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친환경·자원순환을 강조하는 사보 ‘푸른연금술사’를 만들고 세계적인 환경 사진 작가인 프랑스의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을 현대제철 홍보영화에 등장시켰다.
지금도 현대차 그룹에서 애용하는 홍보 논리는 1단짜리 기사에서 시작됐다. 2005년 11월 8일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가 자동차 리사이클링 센터를 준공했다’는 기사를 보고 저자는 ‘유레카!’를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고로→강판→ 자동차 제조→폐차 재활용’에 이르는 세계 첫 자원순환그룹 탄생이라는 홍보논리를 만들어냈다.
정몽구 회장의 일화도 흥미롭다. 정 회장은 제철소 완공이 가까워지자 일주일에 1~2번씩 헬기를 타고 당진을 방문했다. 필요하다면 매일 헬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일관제철소 기공식 때 내빈과 지역 주민에게 선물한 것은 ‘압력밥솥’이었다. 늘 곁에 사용할 수 있는 물건, 현대제철 행사니 쇠로 만든 물건 등을 기준으로 정 회장이 직접 결정한 선물이었다. 진보 성향의 인사를 중용하고 실용적인 선물을 챙기는 리더십에서 현대가(家)의 잘 알려지지 않은 특질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기자들의 날카로운 취재와 보도가 아픈 예방 주사가 되어 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홍보는 단순한 방어책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조율하며 기회 비용을 줄이는 역할이라는 저자의 통찰을 접하니, 기자로서의 책무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지난 20년 동안 홍보 환경은 급변했다. 매체가 많아지고 개인들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업을 칭찬하고 비판한다. 홍보는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어려워졌지만, 동시에 기업이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무기가 되었다. 승리하는 홍보에 관한 세세한 노하우, 진심이 담긴 홍보 비법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김경식 지음 | 투데이펍ㅣ280쪽ㅣ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