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23년 2월 실손보험에 가입한 뒤 같은 해 11월 척추협착으로 시술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자 보험사는 A씨가 고지의무(보험 가입 시 특정 기간 내 수술·치료이력 등을 보험사에 알려야 할 의무)를 위반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A씨가 보험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험금을 청구했기 때문에, 미리 치료 계획을 세운 뒤 보험에 가입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조사 결과, A씨는 보험 가입 전 3개월 사이 허리통증으로 병원을 2회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가벼운 치료를 받은 것에 불과해 보험사에 이러한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엑스레이(X-ray)를 찍고 투약처방까지 받은 것은 ‘중요한 사항’이라고 판단, A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계약도 해지했다.
반면 B씨는 지난해 6월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한 달 만에 지방간 수술을 받고 보험금을 받았다. B씨도 보험 가입 전 3개월 내 통원치료를 받은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보험사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긴장돼 두근거림(코드 R00.2)으로 안정제를 처방받은 것은 A씨와 달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사실과 달리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무조건 보험금을 받을 수 없거나 계약이 해지되는 것이 아니다. B씨처럼 고지의무를 위반해도, 보험사에 알리지 않은 치료이력 등이 ‘중요한 사항’에 해당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전문가들은 고객이 보험 가입 후 2년 내 수술·치료를 받으면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 여부를 조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 보험 가입 시 중요한 사항인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질병·상해가 아니라면 중요한 사항에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는 보험 가입자가 특정 기간 내 수술·치료이력 등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상법은 중요한 사항을 ‘보험사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상법이 말하는 보험사의 서면 질문지가 구체적이지 않아 분쟁이 발생기도 한다. A씨처럼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보고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는데,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보험사가 문제를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질문지를 보면 질문은 ‘최근 3개월 내 의사로부터 질병확정진단·질병의심소견·치료·입원·수술·투약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수준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중요한 사항인지 판단할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전문가들도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법률·보험 지식이 부족한 고객은 변호사나 손해사정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질병·상해가 아닌 사안으로 병원에 다녀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단순 감기나 두통·소화불량 등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겪을 수 있는 증상도 마찬가지다. 다만, 언제든 보험사가 문제로 지적하면 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게 현실이다.
손해사정사 무료선임 서비스 ‘올받음’을 운영하는 어슈런스의 염선무 대표는 “중요한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하면 판례 등을 참고해 결정된다”라며 “상식적으로 질병·상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로 판단하지만, 다툼의 여지가 있어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라고 했다.
☞올받음은
손해사정사와 상담·업무의뢰를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어슈런스가 운영하고 있다. ‘손해사정사 선임권’ 서비스를 운영하며 실손보험을 비롯한 배상책임, 교통사고 등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