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 들어온지 보름. 요일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라비아 숫자로 된 날짜와 시간은 정확히 기억하지만, 무슨 요일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요일을 잊어버린 이유는 단순하다. 주변에 ‘오늘 무슨 요일이지?’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고, 평일이나 주말이나 일상에 변화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주 5일제 근무에서 갑자기 주 7일제 근무의 세계로 들어선 기분이다.
남극에서는 요일보다 날씨가 ‘갑’이다. 날씨가 좋으면 평일이고 흐리면 휴일이다. 주말을 따져서 일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제때 일을 다 마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연구를 위한 시료 채취 등 모든 작업이 외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일정이 정해진다. 헬리콥터를 이용해 이동해야 하는 경우, 구름과 바람에 따라 이륙 여부가 결정된다.
남극에서 카타바틱이 불어닥치는 날은 한여름 태풍 경보와 맞먹는다. 카타바틱은 산을 타고 넘어오는 활강풍으로 경사면에 쌓인 얼음 알갱이들을 쓸어내리는 매서운 바람이다.
카타바틱이 부는 날에는 가급적 실외 출입을 자제하고 실내에서 생활해야 한다. 주어진 기간 내에 조사를 마쳐야 하는 연구팀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덕분에 아무것도 못 하고 창 밖만 보는 공치는 날도 생긴다.
실제 올해 남극 하계 연구에 참가한 김정훈 극지연구소 박사와 MPA(marine protected area) 팀은 구름으로 시야 확보가 안 되는 탓에 황제펭귄 번식지 쿨만 아일랜드 입도에 3번이나 실패했다.
출발지 날씨와 도착지 날씨의 궁합이 안 맞은 영향이다. 남극 연구자들이 날씨가 좋을 때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끝내려고 애쓰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백야 현상 덕분에 24시간 일해도 언제가 밤인지 모른다.
일기예보가 내일 하루의 희비를 가르는 잣대가 된다. 인공강우를 운운하는 21세기에도 남극에서의 활동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