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광고 20여분 간 40~50개…소비자 '영화광고 보지 않을 권리' 요구
광고 매출, 영화관 주요 수익원…'관람료 인상 가능성'에 해결 난관
'전체관람가' 영화 광고에 '청불' 예고편…관련 개정안 표류

"아이와 함께 ‘겨울왕국2’ 더빙 버전을 보고 온 남편이 ‘극장이 좀 너무했다’고 하더라고요. 더빙 버전이면 어린이 관객이 많을텐데 굳이 욕설이 나오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예고편을 틀어야 했냐고요."

최근 온라인 맘카페(육아 정보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가 흥행을 이어가는 가운데 영화 상영 전 나오는 광고 영상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확인을 위해 4일 서울시 영등포구 롯데시네마를 찾았다. 기자가 예매한 ‘겨울왕국2’ 상영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상영관 입장은 그보다 10분 앞선 5시 20분부터 시작됐다. 상영관에 들어서니 이미 사전 광고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12세 관람가)’ 예고편을 시작으로 20여 분간 무려 49개 광고가 나왔다.

지난달 21일 서울시 영등포구의 CGV에 마련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 포토존에서 관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같은 브랜드 광고가 반복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도미노피자의 경우 똑같은 광고가 연속 두 번,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는 다른 내용의 광고가 연이어 두 번 나왔다. 배우 고소영을 모델로 내세운 화장품 브랜드 끌레드벨의 광고는 시차를 두고 세 번이나 방영됐다. 5시 41분, 광고와 예고편 영상이 모두 끝난 이후에야 본영화가 시작됐다. 예매한 영화 시작 시각(5시 30분)을 넘긴 것이다.

CGV도 상황은 비슷했다. 6시 55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10분 전인 6시 45분에 상영관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20여 분 간 40개의 광고와 영화 예고편이 나왔고, 본영화는 7시 5분쯤 시작했다.

◇ 광고 매출, 영화관 주요 수익원…‘영화 광고 보지 않을 권리’ 요구도

이런 관람 방식은 영화관의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불만을 표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이날 영화관에서 만난 대학생 유민지(가명·22) 씨는 "평소에도 광고를 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상영 시간보다 5~10분 정도 늦게 (상영관에) 들어간다. 집에서 TV를 볼 때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는데 영화관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영화관 관계자는 "본영화 시작 시간이 고지 시각보다 10분 정도 늦어지는 건 부득이하게 상영관에 늦게 입장하는 관객을 위한 ‘에티켓 시간"이라며 "실제 영화의 러닝타임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CGV 입장권 하단에는 이런 내용을 설명하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롯데시네마 입장권에도 "예고편 상영 등 사정에 의해 본 영화 시작 시각이 10여 분 정도 차이 날 수 있습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다른 속사정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광고가 영화관의 주요 수익원이란 것이다. 영화관의 수익 구조는 크게 관람료, 매점, 광고, 장비 판매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광고 매출이 9~10% 내외를 차지한다. 실례로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CGV의 국내사업 부문 매출액 2821억원 가운데 광고 매출은 약 10%에 해당하는 293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광고 매출은 관람료와 달리 배급사와 수익을 나누지 않아 영화관 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 수익원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영화 상영 시간과 예고편·광고 시간을 구분해 표기하도록 하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영화광고 보지 않을 권리법)’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관련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관행처럼 영화 시작 전 각종 상업광고와 영화예고를 상영해왔지만, 이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한 소비자의 동의 없이 영화상영관 수익을 위한 상업광고 시청을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영화관 관람료 인상 우려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광고 시간을 고지해 사람들이 광고를 보지 않으면 당연히 광고 효과가 줄어들 것"이라며 "광고가 줄어들거나 없어질 경우 수익이 줄어든 영화관은 결국 관람료 가격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 영화 예고편 ‘선정성’ 논란도…관련 개정안은 국회서 계류

영화관 광고를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겨울왕국2’는 전체관람가 영화로, 남녀노소를 불문한 전 세대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겨울왕국2’ 상영관의 광고 중에는 수위를 아슬하게 넘나드는 것들이 있었다. ‘15세 관람가’ 영화 ‘시동’의 예고편에서는 ‘삐’ 묵음처리와 함께 "도와줘야지 X끼야"라는 욕설이 섞인 대사가 나왔다. 심지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넷플릭스 영화 ‘6언더그라운드’ 예고편도 흘러나왔다.

지난 4일 서울시 영등포구 롯데시네마의 ‘겨울왕국2’ 상영관에서 본영화 시작 전 광고 중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받은 넷플릭스 영화 ‘6언더그라운드’ 예고편이 나오고 있다.

실제 소비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한 온라인 맘카페 회원은 "‘겨울왕국2’를 보고 왔는데 한 예고편에서 ‘18’ 같은 욕설이 나오더라"며 "사실 장난감 광고 같은 것도 부담인데 욕설이 섞인 영화 광고가 나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다른 회원들도 "(영화관 광고가) 너무 자극적이라 아이의 눈을 가려준 적도 있다" "아이들 영화는 광고를 빼야 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영화관 광고 영상 수위를 둘러싼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또 다른 맘카페 회원은 "메가박스에서 전체관람가 영화 ‘그린치’를 봤는데 광고 상영 중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기괴한 호러영화 예고편이 나와 재빨리 아이의 눈을 가려줬다"며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서 그런 영상을 보여줄 뻔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외에 "‘뽀로로 극장판’을 보러 갔다가 성인 나체와 적나라한 대사가 나오는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튤립피버’ 예고편이 나오는데 아이들이 ‘저건 뭐야~’라고 물어봐 난처했다"는 글도 있었다.

이런 문제가 계속되는 것은 허술한 영상물 등급 규정 때문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따르면, 영화 상영등급은 영화진흥법에 따라 △전체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 관람 불가 △제한상영가 등 5등급으로 나눈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 예고편 영상은 △전체관람가 △청소년 관람 불가 2등급으로만 분류하고, 예고편 이외에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상업용 광고는 전체관람가 등급 판정만 가능하다. 영화 예고편의 경우 2011년 관련 법안이 개정되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추가된 것이다. 기존에는 상업용 광고처럼 영상 등급을 아예 분류하지 않았다.

롯데시네마 측은 "넷플릭스 광고는 영화 예고편이 아닌 상업용 광고로 분류돼 논란이 발생한 것 같다"며 "광고주 측의 협조를 구해 고개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통 예고편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TV 등에도 노출되기 때문에 최대한 자극적인 내용을 배제해 제작된다"며 "영화관 광고 편성 단계에서도 본영화 등급이 전체관람가인 영화에 청소년 관람불가 예고편을 상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등급 판정을 거쳤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체관람가인 영화는 말 그대로 전 연령이 모두 보는 건데 이미 정제된 예고편을 배제하는 건 성인 관객들에게 또 다른 역차별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에선 관련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조경태 자유한국당의원은 지난 7월 예고편의 상영등급도 5등급으로 나누고 예고편 영화의 상영등급은 본영화의 상영등급과 동일한 등급으로 분류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10월 본편의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등급을 받은 경우 예고편 영화는 같은 등급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두 개정안 모두 아직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에 계류돼 있다.

관련 실무 기관인 영상물등급위원회도 난처한 입장을 표했다. 한 위원회 관계자는 "‘겨울왕국2’ 개봉 전 각 영화관에 광고 편성에 주의할 것을 권고했다"면서도 "법안이 표류하는 상황에서 이를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