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사이다, 투명 페트병으로...맥주 페트병은 퇴출 수순?
와인·위스키병 개선 불가...수입주류 업체 90% 환경부담금 내야
이달 25일 '자원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주류, 화장품 업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재활용이 어려운 용기 사용을 중단하고, 라벨도 쉽게 떨어지는 분리성 접착제로 변경해야 한다. 이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등급에 따라 환경개선부담금을 최대 30% 초과 부담해야 한다.
음료 업계는 유색 페트병 퇴출에 나섰다. 롯데칠성음료는 1984년부터 선보였던 칠성사이다의 초록색 페트병을 무색 페트병으로 전면 교체한다. 이 회사는 앞서 무색 페트병을 적용한 스트롱 사이다를 선보인 데 이어, 밀키스, 마운틴듀,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등의 유색 병도 무색 페트병으로 전환했다. 코카콜라도 지난 5월 탄산수 씨그램과 스프라이트 등 초록색 페트병을 무색 페트병으로 교체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환경부 개정안에 맞춰 용기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면서 "탄산음료의 경우 운반 과정에서 직사광선에 장기간 노출되면 맛이 변질되거나 탄산이 빠질 가능성이 있어, 페트병을 담는 운반용 상자의 포장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주류 업계에선 소주를 투명 페트병으로 교체했지만, 맥주는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다. 맥주 페트병은 제품 변질을 막기 위해 삼중 구조로 제작된 갈색 페트병을 쓰는데, 재활용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업계는 환경부 연구용역 결과에 맞춰 결정을 짓는다는 방침이다. 최악의 경우 전체 맥주 판매량의 15%를 차지하는 페트병 맥주 생산을 포기하는 방향도 검토 중이다.
와인, 위스키 등 수입 주류의 경우 국내 규격에 맞는 용기 제작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업계는 시장의 특성과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행정이라며 강도 높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수입주류협회는 관련 연구 용역을 진행하는 동시에 유색 병 규제 반대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다. 국내에 주류를 수출하는 칠레, 호주 등도 환경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세계무역기구(WTO)와 무역상기술장벽협정(TBT)에 한국 정부의 규제가 무역장벽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와인은 산화와 변질을 막기 위해 직사광선이 투과히지 않도록 짙은 색상의 병을 사용하고, 위스키는 위조 방지를 위해 이중 캡과 홀로그램 라벨 등을 적용한다. 업계는 이 같은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한국 재활용 업체의 재활용 용이성에 초점을 맞춰 동일한 개정안을 적용한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한 수입 주류업계 관계자는 "위스키의 경우 수입 과정에서 라벨이 제대로 접착되지 않으면 식약처로부터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환경부는 제거가 용이한 라벨을 붙이라고 하니 상충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하며 "라벨을 잘 붙이고, 환경부담금을 더 내라는 소리로 들린다"고 토로했다.
페르노리카 관계자는 "자원 재활용이라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공청회 등 사전 논의 없이 획일화된 가이드라인을 만든 점은 아쉽다"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입 주류업체의 90% 이상이 하위 등급을 받을 것이다. 환경부담금이 늘어나면 결국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화장품 업계도 용기 교체가 시급한 상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유색 화장품 병이나 거울이 붙어있는 팩트, 고무 호스가 들어간 펌프식 용기 등은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로 환경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화장품 용기 제조업체 연우 관계자는 "업계가 우왕좌왕하는 분위기"라고 전하며 "화장품 용기의 경우 10개 이상의 부품이 조립되기 때문에, 용기 개발을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연구가 필요하다. 쉽게 바꾸긴 어렵겠지만, 개정안에 맞춰 용기를 교체하는 흐름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장품은 '용기가 절반'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용기 디자인이 제품의 정체성은 물론 매출까지 좌우한다. 에스티로더 에센스의 경우 '갈색병'이라는 애칭으로 스테디셀러가 됐고, 최근 1조원대에 에스티로더에 인수된 국내 화장품 닥터자르트도 약병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용기로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유예기간이 있으니 법의 취지에 맞춰 개선해 갈 것"이라며 "이미 일부 브랜드는 공병 수거 이벤트를 펼치고 있고, 목욕용품인 해피바스 제품도 친환경 용기로 전환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