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저물가로 소비 주는데, 정부는 유통업 규제에 골몰

입력 2019.10.10 06:00

이코노미스트 홍춘욱은 올해 펴낸 저서 ‘돈의 역사’에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설명하는 사례 하나를 들었다.

한 해에 약 10억원 정도의 생필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A가 있다고 치자. A는 10억원 상당에 이르는 토지와 기계를 보유하고 있고, 연 이자율 5%에 5억원 가량의 은행 대출을 받은 상태다. 그러던 차에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가가 10% 빠지면, 체감 이자 부담은 15% 이상 수준으로 올라간다. 경영 압박이 심해질 것이며 은행의 대출 회수 압박이 빗발칠 것이다. 비누·휴지·샴푸 가격이 떨어지는 마당에 공장 기계 가격인들 온전할까.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65년 물가지수 산출 이래 처음으로 두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은 유통업계다.

저(低)물가 상황에선 소비자들은 심리적으로 당장의 소비를 줄이게 된다. 앞으로 물건값이 더 싸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창립 26년만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낸 이마트를 비롯해 대형마트들은 생존을 위해 초저가 경쟁에 나섰다.

이마트의 4900원짜리 와인, 롯데마트의 5000원짜리 치킨, 홈플러스의 990원 삼겹살 같은 초저가 상품은 올해 대형마트를 지배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마트에 납품하는 업체들은 어떨까. 생활용품 업체 깨끗한나라는 올 상반기 매출이 작년보다 4% 줄었다. 그런데 같은기간 이자비용은 38% 증가했고, 약 250억원의 적자를 냈다. 제지 1호 기계의 생산이 중단되고 건물·기계장치 등의 감가상각비용이 지출되면서 유형자산은 16% 감소했다.

비단 깨끗한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상반기 기업 실적 하락에 따른 법인세 중간예납이 감소하면서 8월까지 국세수입은 작년보다 3조7000억원이나 줄었다. 그만큼 기업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경기는 악화일로인데, 정부나 국회는 유통업 규제에만 골몰하고 있다. 서울시가 약 2000억원에 땅을 팔고도 허가를 내주지 않아 7년째 공터인 ‘롯데 상암몰’이 대표적이다.

격주 일요일마다 강제로 마트의 문을 닫게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된데 이어 복합쇼핑몰 강제 휴무까지 규제하는 법 개정도 진행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유통업계 판촉 행사와 관련한 심사지침을 개정해 오는 31일 시행할 예정이다. 백화점·아웃렛은 이 지침이 시행되면 할인행사가 사라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시민들의 71%가 찬성하며 3년만에 창원 스타필드가 문을 열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결정은 유통업체와 소상공인간의 갈등이 불거지는 가운데 시민들의 공론화로 결정을 내린 첫 사례다.

경제학계에선 지금의 저물가 상황을 '경제 위기로 갈 수 있는 초입에 서 있다'고 진단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잘 관리하면 위기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이대로 계속 가면 위기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의미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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