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191개국 중 한국만 웃지못할 규제 있다"

조선일보
  • 오로라 기자
    입력 2019.09.26 03:10

    [오늘의 세상] 정부 정책에 이례적 공개 비판

    한국인은 한옥·시골 민박만 가능
    실거주 안하면 빈집 못 빌려주고 아파트는 이웃 동의까지 받아야
    정부, 내국인 허용 개정 나섰지만 1년에 180일로 영업일 절반 줄어
    업계 "무늬만 완화, 도움 안 된다"

    호주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우모(32)씨는 지난 여름방학 때 서울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며 한 달간 거주할 계획이었다. 고향이 지방인 그는 에어비앤비(집의 빈방을 여행객과 공유하는 서비스) 앱으로 숙소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호텔보다 싸고 제 집처럼 사용할 수 있어 우씨에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번번이 "한국인 손님 받았다가는 단속에 걸린다"며 퇴짜를 놨다. 에어비앤비 관계자는 "공유 숙박이 보급된 191국 중 유일하게 내국인의 공유 숙박 이용을 금지한 한국식 규제가 낳은 웃지 못할 역차별"이라고 했다.

    글로벌 숙박 공유 기업 에어비앤비가 25일 보도 자료를 내고 한국 정부의 공유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한국의 법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내국인 차별을 하고 있으며 정부가 준비한다는 새 제도도 공유 경제 활성화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2014년 한국에 진출한 에어비앤비는 해외 사례를 토대로, '분명하고 일관성 있는 규제' '단계적이고 차별화된 접근' '단순함'이라는 규제 3원칙까지 제시했다.

    전 세계에서 사업하고 있는 에어비앤비가 현지 정부 정책을 이처럼 정면 비판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 공유 경제 전문가는 "에어비앤비의 입장이 이해된다"며 "숙박 공유에 대한 한국 정부의 규제가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규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만 안 되는 내국인 공유 숙박

    현재 한국의 도시에서 한국인이 에어비앤비 숙소를 사용하면 불법이다. 2011년 관광진흥법에 신설된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 제도 때문이다. 폭증하던 중국인 관광객의 숙박 수요를 맞추려 만든 이 제도는 도시에서 가정집을 숙박용으로 빌려주려면 등록증을 취득하도록 규정했다. 아파트에서 공유 숙박업을 할 경우엔 이웃의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만 등록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외국인이 한국의 가정집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자'는 명분으로 내국인을 영업 대상에서 아예 배제했다. 한옥 체험과 농어촌 민박을 제외한 도시 지역 에어비앤비는 내국인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전 세계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숙박 공유 서비스를 한국인이 한국에서는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에어비앤비 호스트(집주인)는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한 중국도 자국민의 에어비앤비 사용을 허용하는데 한국은 내국인에게 방을 빌려주면 불법이고 거절하면 손님의 항의를 들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해외 한국 숙박공유 규제 비교표

    황당한 법 규정은 현실에서는 이미 사문화(死文化)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주변, 강남·서초 일대의 고급 아파트 등지의 에어비앤비 숙소는 휴가철이 되면 한국인 손님들이 싹쓸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고객 294만명 중 69%(202만명)가 내국인이었다. 사실상 주(主)고객은 한국인인 것이다.

    ◇빈집 활용도 못 해

    규제가 사문화될 위기를 맞아 정부는 지난 6월 불법이 의심되는 공유 숙박업소 1834곳을 조사하는 등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한편으로는 에어비앤비 등 공유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의 핵심은 '공유민박업'이라는 새로운 숙박업 등록증을 신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무늬만 완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유민박업은 1년에 180일에 한해서 도심에서도 가정집을 내·외국민 구분 없이 대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집주인은 이 등록증을 취득하면 1년 내내 영업할 수 있는 기존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 등록증을 포기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음성적으로 내국인 상대로 영업이 가능한데 누가 연중 절반의 영업을 포기하겠느냐"고 말했다. "법이 개정된다 해도 내국인 역차별 해소에도, 공유 경제 활성화에도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개정안은 8개월 넘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내국인 차별뿐 아니라 '빈집 활용'이 원천 봉쇄돼 있는 것도 한국식 규제의 허점이다. 현행법상 국내 민박사업에 활용되는 집은 '실거주' 가정집에 한정된다. 전국적으로 빈집이 늘어나는 추세인데도 유휴(遊休) 자원을 활용하는 사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농촌의 빈집을 꾸며서 내·외국민 관광객에게 임대하자는 아이디어로 '한국의 에어비앤비' 를 꿈꿨던 스타트업 '다자요'는 규제에 막혀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해외에선 가능한 사업 모델이지만 한국에선 사업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공유 경제를 옥죄는 한국식 규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한국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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