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BIZ] 세계 반도체 시장 지각변동 일으키는 EUV

조선일보
  • 강동철 기자
    입력 2019.09.26 03:07

    한계로 여겨졌던 2㎚ 공정 가능
    반도체 크기 줄고 성능은 2배… 웨이퍼에 들어가는 칩 대폭 증가
    인텔, EUV용 장비 사들이고 삼성·TSMC는 초미세공정 경쟁 "모든 기기의 IT화 이끌 것"

    세계 반도체 시장이 또 한 번의 지각 변동을 준비하고 있다. 평면 반도체에서 입체 반도체로, 단층 반도체에서 수십 층을 올려 쌓는 수직 반도체로의 기술 혁신에 이어, 이번에는 EUV(극자외선) 기술이 반도체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2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비메모리반도체 기업인 미국 인텔이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 ASML로부터 1대당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EUV 반도체 생산 장비의 발주를 시작했다. 세계 양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가 EUV 라인 구축에 나선 데 이어, 인텔까지 뛰어들며 EUV가 '대세 기술'이 된 것이다.

    EUV 공정 기술 경쟁 나선 반도체 기업들

    EUV 기술은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 기술로, 파장 길이가 13.5㎚(나노미터·10억분의 1m)에 불과한 극(極)자외선을 이용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EUV를 이용하면 반도체 업계에서 미세 공정의 한계로 여겨졌던 7㎚를 뛰어넘어 2~5㎚에 이르는 초미세 공정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의 크기가 줄고 에너지 소모가 줄면서 성능은 높아지고 웨이퍼 한 장으로 더 많은 반도체 칩을 만들 수 있어 생산성도 높아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EUV 시대가 열리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의 반도체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게 돼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같은 미래 기술의 상용화 속도도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능 반도체부터 메모리까지 확산

    지금까지 반도체 업체들이 주로 사용해 온 불화아르곤(ArF) 광원은 파장이 193㎚에 달했다. 이 때문에 현재 반도체 업계의 주력 제품인 10㎚대 미세 회로를 그리는 데도 복잡한 회로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 겹쳐 그리는 복잡한 '패터닝(patterning)' 과정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세계 최대 CPU 생산업체인 미국 인텔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수년째 12~14㎚ 공정에서 반도체를 생산해왔다. 그러나 EUV 기술 확산과 함께 반도체 기업 간 초미세 공정 경쟁에 다시 한 번 불이 붙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모바일 CPU(중앙처리장치) 제품을 7㎚ EUV 공정으로 양산을 시작한 데 이어, 내년에는 5㎚ 제품을, 2021년부터는 3㎚ 양산에 돌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를 통해 비메모리 시장에서도 기술적 우위를 기반으로 업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목표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TSMC도 이에 질세라 "2024년부터 2㎚급 반도체도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한 발 뒤처진 인텔은 2021년부터 AI, 데이터센터 등에 쓰이는 GPU(그래픽용 반도체)를 먼저 EUV 공정으로 양산할 전망이다. 이후 서버용 CPU(중앙처리장치), PC용 CPU 등으로 확산해 주도권을 유지할 계획이다.

    ◇IT 기술의 진보 이끄는 EUV 반도체

    업계는 조만간 메모리 반도체에도 EUV 기술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차세대 D램을 개발하면서 EUV를 이용한 공정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사상 최초로 한 자릿수 ㎚ 공정으로 생산된 초고속 D램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V 기술로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얻는 이득은 크다. EUV 기술로 만든 초미세 공정 반도체는 크기와 함께 소비 전력이 줄어들어 발열이 적다. 이는 작동 속도를 높여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유리하다. 실제로 5㎚ 공정의 제품은 7㎚ 공정 제품보다 크기는 25% 작은데도 성능은 10%, 전력 효율은 20% 더 좋다. 제조 공정이 3㎚까지 진화하면, 7㎚ 대비 크기는 절반 수준으로 줄고, 성능과 전력 효율은 각각 35%와 50% 개선된다.

    무엇보다 EUV 기술을 활용하면 현재 ArF 광원 기술에 필요한 반복 공정 수가 줄어든다. 이로 인해 제조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생산비도 장기적으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내장한 반도체를 만드는 것도 수월해진다. 업계에서는 "2년마다 반도체 성능이 2배 개선된다는 '무어의 법칙'이 EUV와 함께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IT(정보기술) 업계는 EUV 반도체 덕분에 AI,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로봇 등 미래 기술의 확산이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EUV 기술로 고성능 반도체가 앞으로 자동차·옷·안경·시계 등 주변의 모든 사물에 탑재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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