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IT 버블 닮았다"… 손정의 펀드 위기론

조선일보
  • 성호철 기자
    입력 2019.09.20 03:11

    [248兆 세계최대 테크펀드… 전세계서 불안한 시선]
    투자한 비상장기업 가치 뻥튀기… 6곳 중 4곳이 상장 후 주식 폭락
    우버 -25%, 슬랙 -36%
    FT "소프트뱅크도 위험해질 것"

    1조원 넘게 적자낸 쿠팡 가치도 50억→35억→90억달러
    투자할때마다 제멋대로 책정

    일본 소프트뱅크는 4년 전 국내 온라인 쇼핑 업체인 쿠팡에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쿠팡 지분을 자사가 주도하는 벤처 펀드 비전펀드에 7억달러에 넘겼다. 쿠팡은 그 사이 매년 대규모 적자를 낸 끝에 자본 잠식에 빠졌다. 작년 한 해에만 1조97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최초 쿠팡의 기업 가치를 50억달러로 평가했던 소프트뱅크는 이를 35억달러로 낮췄다. 하지만 이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비전펀드가 작년 11월 쿠팡에 20억달러 추가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더욱 의외인 것은 쿠팡의 기업 가치를 종전 35억달러에서 90억달러(약 10조7000억원)로 높인 것이다. 이는 한국 증시의 삼성화재, LG전자, 한화금융의 시가총액에 맞먹는 액수다. 몇 달 새 기업 가치가 3배 정도 껑충 뛴 셈이다. 덕분에 비전펀드의 장부상 이익은 11억달러나 늘었다. 외신들이 전한 투자의 전말이다.

    비전펀드가 최근 투자한 기업들의 가치평가 외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투자 기법에 대해 비전펀드는 "당장의 수익 창출 역량보다 글로벌 1위로서 규모의 경제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실제로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은 쿠팡 외에도 대부분이 설립 이후 수익을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비전펀드의 이런 투자 철학에 대한 경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전펀드가 최근 상장시킨 기업들의 주가가 줄줄이 폭락하며 상장을 통한 이익 실현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2~3년간 자사가 투자한 비(非)상장 기업의 평가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방식으로 장부상으론 엄청난 영업이익을 올렸던 비전펀드의 거품이 꺼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의 안방인 일본이다. 전 세계 벤처캐피털 운영 자산(8030억달러 추정) 가운데 혼자서 26%(2080억달러·248조원)를 주무를 정도로 절대적 위상을 자랑하며, '세계 테크 혁신의 상징'으로 꼽혔던 비전펀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취급을 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달 '소프트뱅크그룹의 힘과 사각(死角)'이라는 기획 시리즈를 게재했다. 이 신문은 "기술 혁신과 금융 완화가 한꺼번에 진행되는 현재 상황은 2000년 IT 거품 때와 유사하다"며 "당시엔 상장 IT 주식에 돈이 몰렸다면 지금은 비상장 주식이 대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선두에 비전펀드가 있다"며 비전펀드발(發) 테크버블 붕괴를 우려한 것이다. 세계 IT 업계를 뒤흔드는 비전펀드의 파워에 환호와 지지를 보내던 일본 최고의 경제 신문이 가장 먼저 경고음을 낸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19일 "비전펀드가 흔들리면 소프트뱅크가 그 위험을 떠안을 것"이라고 이 대열에 가세했다.

    비전펀드 성적표는 서류상으론 월등하다. 2017년 1호 펀드를 시작한 이후 714억달러를 투자해 이익만 202억달러(누적 기준)에 달한다.

    니케이는 "비전펀드의 투자를 받은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 35사를 조사한 결과, 평가 금액은 투자 때와 비교해 약 2.9배 올랐다"며 "(이런 숫자가 현실이 되면) 1호 펀드의 연간 이익율은 45%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음식 배달 스타트업인 도어데시가 전형적이다. 2018년 3월부터 1년 새 비전펀드에서 3차례 투자를 연달아 받은 이 회사의 기업 가치는 19배나 커졌다. 비전펀드가 투자 때마다 이 회사 가치를 높였고, 그때마다 자신의 앞선 투자금은 서류상 엄청난 이익을 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는 숫자일 뿐 실현된 이익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키운 투자 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했더니 주가가 크게 떨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FT는 "상장한 비전펀드 투자 기업 6곳 가운데 네 기업의 주가가 기업 공개 때 가격을 밑돈다"며 "우버슬랙은 무려 25%, 36%나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정작 이익을 실현해야 할 단계에서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건물을 통째로 빌린 뒤 사무실을 재임대하는 스타트업인 위워크는 결국 상장이 무산될 위기다. 비전펀드는 올 1월 이 기업의 가치를 470억달러로 평가하고 20억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막상 상장을 앞두고 증권가의 가치 평가를 받아보니 150억달러에 불과했다. 이달 23일로 예정됐던 상장은 연말로 연기됐다. 비전펀드가 투자 기업의 가치를 뻥튀기해 투자금을 끌어들이는 위험한 페달 밟기를 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국 우버나 위워크는 물론이고 중국의 디디추싱, 동남아의 그랩 등도 모두 조(兆) 단위 적자를 내고 있다. 이 기업들이 언제 흑자 전환할 수 있을지 명확한 예측도 없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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