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전' 띄워… 연희동을 핫플레이스 만든 마법사

입력 2019.09.11 03:13

[땅집GO] 연희동 주택 70여채 재생건축…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
- 부수지 않고 분위기는 살리고…
담장 없애고 통유리로 터놓아 훤히 보이는 가게 내부에 시선
- '전대차'로 지켜낸 연희동 상권
리모델링 후 직접 10년간 임대
상가 세입자에게 싸게 세놓아 임대료 10년째 거의 변동 없자 인기 맛집 떠나는일 없이 유지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맛로. 차량 2대가 오갈 수 있는 자그마한 골목길에 20대 커플과 40~50대 여성 서넛이 스마트폰으로 주변 풍경을 쉴 새 없이 찍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운치 있는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폴앤폴리나'라는 빵집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장바구니를 든 50대 여성이 "100m쯤 걸어가면 보인다"고 알려줬다.

연희동은 유명 맛집과 개성 넘치는 카페가 가득해 이른바 전국구 핫 플레이스(hot-place)로 꼽힌다. 하지만 서울의 다른 상권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바글거리는 행인이나 요란한 간판을 내건 상점이 보이지 않는다. 어른 키보다 약간 높은 담장과 잘 가꾼 정원수가 보이는 고급 이층집 사이로 요란하지 않은 간판을 내건 카페와 스튜디오, 액세서리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연희동은 이런 주택과 상점이 모여 '주택가 카페촌'이란 독특한 상권을 형성했다.

이른바 재생 건축의 성지라는 서울 연희동의 한 상가 주택 건물 계단에 앉은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
이른바 재생 건축의 성지라는 서울 연희동의 한 상가 주택 건물 계단에 앉은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 그는 지난 10여 년간 연희동에서만 저층 주택 70여 채를 리모델링해 개성 넘치고 수익성 좋은 건물로 탈바꿈시켰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연희동 카페촌은 건물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반면 한 가지 공통점도 분명하다. 신축 건물은 찾기 어렵다. 대부분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했다. 벽돌과 대리석을 살려 개조했다. 비어있던 마당엔 노출형 콘크리트로 2~3층짜리 건물을 새로 올렸다. 이 건물은 계단이나 공중 다리로 기존 주택과 연결된다. 리모델링한 상가 전면에는 이른바 통창을 달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연희동 일대 리모델링 붐에 불을 댕긴 이가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다. 그 자신도 연희동 토박이다. "원래 연희동이 부자 동네여서 마당 있는 2층 양옥집이 많았죠. 자녀들은 떠나고, 집주인은 나이 들어 이런 집들이 매물로 나왔지요. 이런 집을 산 매수자들이 건축을 의뢰할 때마다 '집을 부수지 말고 리모델링하는 게 건물 분위기도 살리고 수익성도 좋다'고 설득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김 대표의 손끝을 거쳐 재탄생한 건물만 70여 채에 달한다. 현재 연희동에는 빈티지 분위기로 인기를 얻은 카페 '제니스 커피하우스', 일본 가정식 식당으로 유명한 '시오', 이연복 셰프가 운영하는 중국 레스토랑 '목란' 등 전국구 맛집이 자리 잡았다. 이제는 국내에서 가장 소문난 '리모델링 건축의 성지(聖地)'가 된 것이다.

김 대표가 리모델링을 선택한 숨은 이유가 있다. 수익성이나 건축비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신축하면 3.3㎡(1평)당 건축비가 600만~700만원씩 든다. 리모델링하면 평당 200만~400만원으로 낮아진다. 김 대표는 "세입자들은 신축보다 분위기가 있는 리모델링 건물을 더 선호한다"며 "건축비가 낮기 때문에 건축주들도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연희동에는 다른 상권에는 없는 또 다른 강점이 있다. 연희동과 비슷한 시기에 유명해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과 달리 '젠트리피케이션'(상권이 뜨면서 임대료가 올라 기존 상인들이 쫓겨 나가는 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 연희동 일대 상가 임대료는 10년째 변동이 없다.

김 대표의 숨은 역할이 컸다. 그는 연희동 핵심 상권인 사러가쇼핑센터 일대 건물 8채를 리모델링한 뒤 건물주로부터 10년간 장기 임차했다. 건축주에게는 만족할 만한 수익성을 보장하는 대신 임대료를 최소화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빌린 상가 건물을 실력 있는 카페나 음식점 주인들에게 다시 임대했다. 역시 임대료를 거의 올리지 않는 조건이었다. 이른바 '전대차(轉貸借)' 방식이다. 김 대표가 연희동 핵심 상권 임대료를 시세보다 저렴하게 책정하자, 인근 지역 임대료도 적절하게 유지됐다.

"건물주는 임대료는 적당히 받아도 건물 가치가 오르면 만족합니다. 연희동만 해도 10년 전에는 땅값이 3.3㎡당 1200만~13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카페 거리 기준 4000만~5000만원까지 올랐습니다. 덕분에 다른 상권은 망해도 연희동은 아직 공실(空室)이 없습니다."

연희동은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 재생 사업'의 대표 사례가 됐다.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연희동을 수시로 찾는다. 김 대표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골목 상권 및 도시 재생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연희동 건물주들은 세입자를 살려야 동네가 살고, 내 건물도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것이 연희동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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