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20년 불황 일본의 3대 전철 밟고 있다"

조선일보
  • 김은정 기자
    입력 2019.09.11 03:13

    [오석태 한국SG증권 이코노미스트]
    - 재패니피케이션 대표 케이스 될수 있어
    고령화, 세계서 가장 빠른 속도… 정부 재정으로 작년부터 버텨… 무역전쟁으로 수출마저 흔들려
    금리, 내달 이어 내년 1분기 인하… 0.5%까지도 내려갈 수 있어… 달러 환율 1250~1260원 갈 것

    "지금 시장이 두려워하는 건 순환적 경기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장기 불황입니다. 한국 경제는 여러 면에서 20년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습니다. 기준금리가 0.5%까지도 내려갈 수 있습니다."

    지난달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0.038%로 1965년 물가지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첫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저성장, 저금리에 저물가까지 겹친 명실상부한 '3저(低) 시대'가 왔다. 20여 년간 고통스러운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퍼지고 있다. 오석태 한국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야말로 '재패니피케이션'(일본화)의 대표 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오 이코노미스트는 서울대 경제학과 86학번으로 그해 대입 학력고사에서 전국 공동 수석을 했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냉정한 거시경제 분석가로 꼽힌다.

    ―우리 경제가 특히 일본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데, 이유가 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데다 최근 들어 재정을 쓰기 시작한 것에 주목한다. 작년부터 우리 경제는 정부 재정으로 버티는 국면에 돌입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국가부채가 일본처럼 GDP의 200%를 넘는 수준까지 가겠느냐고들 하는데, 일본도 30년 전엔 재정이 튼튼했다. 야금야금 곶감 빼먹듯 하다가 이렇게 됐다. 그동안 우리가 일본과는 다를 것이라고 위안했던 것은 내수경제인 일본과 달리 우리는 수출 비중이 높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전 세계적인 불황 얘기가 나오고 세계화 기조가 뒤집혀 자국 중심으로 가는 상황이라 이 전제도 무너지고 있다. 이번 침체 사이클에서 벗어나더라도 장기적으로 일본화에 대한 우려와 공포는 계속될 것이다."

    오석태 한국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이코노미스트
    오석태 한국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행이 오는 10월, 내년 1분기에 각각 25bp(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려 기준금리가 1.0%로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기준금리가 0.5%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금리 인하로 가계 부채가 늘어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를까 봐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내달 금리 인하, 내년 1분기 추가 금리 인하를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금리가 1.0%로 사상 최저 수준이 되는데….

    "지금 내수와 서비스업 비중이 큰 나라는 상대적으로 괜찮지만, 수출과 제조업 비중이 큰 곳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 중 수출과 제조업 비중이 GDP의 30%나 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이 2% 나온다는 건 상당한 성과다. 다만 정부 재정 지출 효과가 대부분이고 민간의 성장 기여도는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내수와 민간 소비를 살리기 위해 지금 상황에서 뭔가 더 할 게 있다면 금리를 1.0%까지 내리는 것이다. 사실 1%를 반드시 사수할 필요도 없다. 상황이 나쁘다면 더 내려갈 수도 있다. 기준금리 0.5%까지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봐야 한다."

    ―실효하한(금리를 더 내려도 효과가 없는 한계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효하한은 선진국에서 제로금리가 하한이 아니고 마이너스로도 갈 수 있지 않으냐는 얘기를 할 때 나오는 얘기이지,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 적용될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한은이 금리를 내리면서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걱정하는데, 이는 뒤집어 말하면 금리 인하 효과가 날까 봐 걱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금리를 내리는 목적은 경제주체가 빚을 많이 지게 하고 자산 가격을 높여서 간접적으로 경기를 부양시키자는 것 아닌가."

    한국은행 기준금리
    ―연말 또는 내년 세계 경제를 판단하기 위한 가늠자가 있다면.

    "관건은 미국 경제다. 아직 대놓고 미국 불황을 얘기하는 기관은 드물지만, 미국 기업 투자 그래프가 꺾이기 시작했다. 경기순환을 주도하는 투자가 나빠지면 전체 경기가 부진할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는 법인세 인하 효과도 사라진다. 미국 주식시장은 앞으로 1년간 기준금리가 100bp(1.0%포인트) 내려갈 것을 전제로 버티는 중이다.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해야 리세션(경기 침체)이라고 부르지만, 지금 상황에선 성장률이 1% 초반까지만 떨어져도 심리적으로 리세션 공포가 닥칠 것이다. 연말까지 미국 고용과 소매판매 지표 등을 유심히 봐야 한다."

    ―이제라도 채권 투자에 나서야 하나.

    "채권 사는 게 망설여지는 이유는 지금 상황이 순환적 경기 침체인지 구조적 장기 불황(Secular Stagnation) 초입인지 헷갈려서다. 순환적 침체 국면이라면 경기가 턴어라운드하는 시점에 주식 등 위험 자산을 사면 되니까 채권을 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 채권을 사는 사람들은 구조적 불황이라고 보고 당장 장기채를 사두는 게 3~4년 뒤에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사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분명 과열된 측면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독일 채권 금리가 일본(-0.2%대)보다 훨씬 낮은 -0.7%까지 내려간 이런 비정상적인 이 상황에서 어떻게 더 사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일본 국채 금리보다도 6~9개월 후면 미국 경제가 어디로 가는지 명확히 보이고, 이때 결정이 쉬워질 것이다. 미국서 재정 확대 정책이 나오고 경기 부양 의지가 확실히 보인다면 채권 말고 주식을 사야 한다. 한국 주식이 싼데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안 사는 건 구조적 침체 상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환율 방향성은?

    "원화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안화의 경우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률(25%) 영향 하나만으로도 달러당 7.5위안까지는 약세 압력을 받을 것이고,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원화 약세는 계속될 것이다. 달러당 원화 환율은 1250~1260원까지 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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