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⑧바이올리니스트가 만든 '황매 매실주' 맛은 어떨까?

조선비즈
  • 박순욱 기자
    입력 2019.09.06 10:23 | 수정 2019.09.06 10:35

    오스트리아에서 10년 바이올린 유학한 한정희 대표, 2010년 더한주류 설립
    ‘잘 익은 황매 쓰고 설탕 대신 꿀 넣은’ 할머니 매실주 레시피 그대로 고품질 고수
    "매실원주, 마음을 정화시키는 바흐의 ‘샤콘느’ 기악곡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

    바흐(Johann S. Bach)의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 샤콘느(Chaconne)는 바흐 기악곡의 진수로 꼽힌다. 강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유튜브를 통해 정경화 연주로 들어본 샤콘느는 빠른 듯 느린 듯한 템포(빠르기)로, 듣는 이의 마음을 가슴 속 바닥까지 후벼파는 듯 하다. 바흐가 이 곡을 완성한 것은 1720년, 그해 아내 마리아 바바라를 잃었다고 한다. 아내 장례식장에서 이 곡이 연주됐다는 얘기도 있다. 연주시간 6분 정도의 짧은 바이올린 독주곡인 샤콘느는 슬프면서도, 듣는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에 한치의 모자람이 없다. 실컷 울고 나면 웬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2년전쯤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당신이 만드는)매실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제가 10년간 오스트리아에서 바이올린 유학생활을 했다는 것 알고 한 질문이었죠. 그때 생각났던 곡이 바흐의 샤콘느입니다. 유학시절 독주로 자주 연주했던 곡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마력이 있어요. 국내 최고 품질의 매실로 만든 저희 매실원주 역시 ‘마시는 사람에게 힐링이 되는 술’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바흐의 샤콘느가 우리 매실주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위대한 문화유산인 클래식 곡을 저희 하찮은 제품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은 잘 알지만, 저희 제품에 그만큼 정성을 쏟고 있다는 의미로 드린 말씀입니다."

    서울 은평구 더한주류 본사에서 만난 한정희 대표(44)는 "추석 선물세트 배송 작업이 마무리돼 이제 한숨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전통술 판매가 전반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어 명절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고도 했다.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가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서울의 밤(매실증류주), 매실원주(알코올 도수 13도), 천매(30도), 15도 원매, 20도 원매. /박순욱 기자
    ◇10년간 바이올린 유학했지만 실력의 한계 절감하고 연주자 꿈 접어

    2010년에 설립된 더한주류는 매실주 전문 양조업체다. 잘 익은 황매(매실나무에서 완전히 익은 노란 매실)만 골라 담금술에 100일 동안 침출시킨 뒤 1년부터 5년까지 숙성시킨 ‘매실원주’, 그리고 이 매실주를 증류해 만든 매실증류주 ‘서울의 밤’이 주력제품이다. 특히 출시 일년밖에 안된 ‘서울의 밤’ 반응이 뜨겁다. 매실주를 1차 증류한 뒤 서양의 술 진(Gin)에 들어가는 노간주나무열매(주니퍼베리)를 첨가해 2차 증류한 ‘서울의 밤’은 ‘매실로 만든 한국의 드라이 진’으로 꼽히며 젊은층에게서 인기가 높다.

    한정희 대표는 매실원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매실이 아닌 기타 과실주를 일체 첨가하지 않고 매실주 원액 100%로 담근 매실주는 우리 제품이 거의 유일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우리가 익히 알던 국내 매실주보다는 가격이 꽤 비싸다. 그러나, 그는 "가격을 낮출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가격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결국 품질을 의도적으로 낮춘다는 것인데, ‘최고의 품질로 약 같은 술을 만들자’는 회사의 설립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10년째 매실주 회사 대표로 일하고 있지만,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10년 동안 유학한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선화예중 3학년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 바이올린 전공으로 학부와 대학원을 수석졸업했다. 그러나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연주자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그는, 포기했다. "2년간 연주자 과정을 더 밟고 솔로이스트(독주자)로 활동하라"는 지도교수의 조언을 듣지 않고 그는 졸업 직후인 2000년도에 귀국,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하루 8~10시간 연습한 수준은 같이 수학한 ‘천재급' 동기들이 한시간 연습한 것과 같았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좌절감을 물리칠 수 없었다. 게다가 허리 디스크가 있어 더 이상 연주활동을 계속할 힘이 없었다." 그는 요즈음 거의 바이올린을 켜지 않는다고 했다.

    매실 원료는 어디서 충당하나?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2000평 규모의 집안 과수원에서 연간 10t 정도 매실이 생산된다. 그리고 매실 재배 최적지로 꼽히는 전남 광양에서도 계약재배로 10t을 수매해서 매실주 원료로 쓴다. 내년쯤 광양으로 양조장을 이전할 계획인데, 그럴 경우 계약재배 물량이 두세배는 늘어날 것이다."

    전공인 바이올린을 포기하고 사업가로 변신한 이유는?

    "서울에서 태어나 선화예술중학교 3학년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바이올린 유학을 갔다. 비엔나시립대학, 클라겐푸르트대학에서 학부 및 대학원을 수석 졸업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로 연주자 과정을 갈까 고민했다. 지도교수는 ‘솔로이스트 과정을 2년 정도 밟으면 그 이후엔 연주자로 탄탄대로를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권했다.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는 바이올린을 전공한 오스트리아 유학파다. 비엔나 시립대학과 클라겐푸르트대학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한 대표는 허리 디스크 등의 이유로 연주자의 꿈을 접었다. /더한주류 제공
    그러나 두가지 문제로 결국 연주자 과정을 포기했다. 바이올린 연주는 서서 해야 하는데, 내게 허리디스크가 왔다. 굉장히 힘들게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올린은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악기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8~10시간 연습했다. ‘하루 연습 안하면 내가 알고, 이틀 쉬면 가족이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얘기가 있지 않나? 연습을 하루도 쉴 수 없었다. 바이올린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허리에 무리가 있었다.

    또 하나 이유는 대학원까지 과정을 마치니까, ‘이런 음악은 천재들이나 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내가 하루 10시간 연습한 수준은 동료 중 속칭 천재들이 한시간 연습한 것과 같았다. 최근까지도 런던심포니 악장을 지낸 토모 캘러, 피아니스트 김정원 같은 동기 천재들과 비교하니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학부, 대학원을 모두 수석졸업했지만 내 실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역시 음악은 타고 나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결국 도중에 포기했다. 사업가이신 아버지도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어려운 일(연주)은 이제 그만하고 귀국에서 사업해봐라'고 권했다."

    ◇국내 유일, 잘 익은 황매 100% 매실 원액으로 고품질 매실원주 만들어

    매실주 회사를 만든 계기는?

    "집안에서 매실 과수원을 갖고 있어서 식탁엔 매실이 항상 넘쳤다. 매년 여름이 되면 할머니는 매실주를 담그셨다. 어릴 때부터 조금씩 매실주 맛은 보고 자랐지만, 매실 사업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귀국 후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다가 국내 매실주를 처음으로 마시게 됐다. 근데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매실주 맛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전혀 다른 술이었다. 상한 술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런가?’ 궁금해서 다음날 일부러 또 마셔봤다. 근데 같은 맛이었다. 그러다 일본에 갈 기회가 있어 일본의 매실주를 마셔봤다. 그런데 일본 매실주 맛은 우리 집에서 만든 매실주와 맛이 같았다. 도대체 이 차이는 뭘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한국에서 제대로 된 매실주를 만들어보자'고 2010년에 지금의 매실주 회사를 차렸다. 기존의 국내 매실주와는 차별화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대표가 설립한 더한주류의 매실주는 국내 일반 매실주와는 만드는 방법부터 달랐다. 다른 매실주들은 매실원액 외에 기타 과실주를 40% 첨가하는 반면, 더한주류의 매실원주는 70%가 넘는 주세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실주 원액 100%로 만든다. 설탕 대신 제주산 꿀을 넣는 것도 다르다. 한 대표 할머니의 매실주 레시피는 황매로 만드는 것, 당분으로 설탕 대신 꿀을 첨가하는 것, 그 두가지였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더한주류 양조장의 증류시설. 이 회사의 매실증류주 ‘서울의 밤’은 매실주를 1차 증류한 뒤 노간주나무열매를 첨가해 2차증류해, 매실 향은 거의 나지 않아 다양한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기 좋다. /더한주류 제공
    매실원주는 원료 매실부터 완전 달랐다. 다른 회사들은 대부분 덜 익은 청매를 따서 매실주 원료로 쓰지만, 더한주류의 매실원주는 잘 익은 황매만 따서 쓴다. 청매는 지름이 2cm 정도로 과육이 단단하고 향이 옅지만, 황매는 청매보다 더 크고 부드럽다. 가격도 세배 정도 더 비싸다. 하지만, 청매는 값도 싸지만 단단해 잘 뭉개지지 않는 장점도 있어 대부분의 술 회사들이 매실주 원료로 쓴다.


    청매와 황매는 어떻게 다른가?

    "청매는 대개 6월쯤 수확하고, 황매는 7월초부터 수확한다. 청매는 덜 익은 매실이고 황매는 다 익은 매실을 말한다. 황매의 문제는 딴 뒤에 하루 안에 처리를 하지 않으면 열매가 뭉개져 버린다는 점이다. 이미 너무 익었기 때문에 금방 상한다는 것,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셈이다. 황매는 잘 익은 과육이라 당도도 높다.

    그래서 우리는 황매를 수확하자마자 바로 급냉시킨다. 모양이 뭉개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급냉시키는 것에 대한 특허도 갖고 있다. 동결된 상태의 황매를 담금술에 부어 100일 정도 침출시킨 뒤 매실을 건져내고 적어도 일년 정도 숙성시킨 후 제품을 만든다. 3년, 5년 숙성시킨 제품도 있다. 알코올 도수 13도 매실원주는 숙성 일년, 15도 제품이 3년, 20도 제품은 5년 숙성시킨 매실주다. 프리미엄 제품인 30도 제품 ‘천매’ 역시 5년 숙성을 거쳤다. 전혀 물을 타지 않은 최고급 매실주다."

    더한주류의 주력 제품들. 사진 왼쪽부터 서울의 밤, 원매(15도), 매실원주(13도). /더한주류 제공
    ◇좋은 술은 잘 짜인 오케스트라와도 같아...가격 내리려고 품질 타협 안해

    일년 전에 나온 매실 증류주 ‘서울의 밤' 반응이 좋다.

    "매실원주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우리나라 주류문화에서는 확실히 비주류였다. 왜냐면 다소 단 맛이 강한 매실원주는 서양의 식전주 혹은 식후주(디저트) 개념의 술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마시는 메인 술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매출이 커지기가 어려웠다. 나는 매실주를 ‘사람들이 건강해질 수 있는 술’이라 생각했다. 고객 중에는 실제로 ‘자기 직전에 매실원주를 한잔 마시면 잠이 잘 온다'는 분들이 많다. 술을 약 비슷하게 만드는 셈이다.

    그러던 차에 ‘우리도 메인 술시장에 뛰어들어 보자'고 만든 게 ‘서울의 밤’이다. 식전주인 매실원주 갖고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소주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매실증류주를 내놓았다. ‘서울의 밤’은 매실증류 원액 외에 진(Gin)의 향을 내는 노간주나무열매(제니퍼베리)를 첨가했다. 대개 진은 곡물을 증류시켜 만드는데, 우리는 곡류 대신 황매실주를 증류(1차)시켜 노간주열매를 넣어 2차 증류했다.
    그런데 ‘우리 회사의 효자가 될 수 있겠구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평소 매실주를 마시지 않던 사람들도 서울의 밤을 마셔본 후에는 매실주를 찾게 되는 후광효과도 있었다. 그래서 매실원주도 덩달아 동반상승하고 있다. ‘서울의 밤’이 회사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의 밤을 맛있게 먹으려면?

    "얼음을 넣어 언더럭스로 마시거나 토닉워터 같은 소다수를 섞어 마시는 걸 권한다. 최근에 재밌게 만들어 마신 경우가, 피자에 뿌리는 핫소스인 타바스코를 뿌려 마셔봤는데, 칵테일 분위기가 물씬 났다."

    고품질- 고가격 제품을 고수하는 이유는?

    "가격을 낮춘다고 매실주가 잘 팔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격을 낮추려면 좀더 저렴한 재료를 써야 하는데, 그 부분과 타협해서 나쁜 제품, 저가제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취하기 위해 마시기 보다는 약이 되는 술을 만드는 게 우리 목적이기 때문에 품질에 관한 한은 타협할 생각은 없다."

    매실주가 포도로 만든 와인, 복분자술 등 다른 과실주와 차이 나는 효능은?

    "동의보감에 따르면 매실주는 염증, 갈증, 열과 뼈에 좋고, 소화에 좋다고 나와있다. 어린 시절, 배 아플 때 매실청 먹은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 같다. 소화, 피로회복, 독소 분해 등에 매실주가 효험이 있다고 본다."

    매실주와 음악(클래식)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나?

    "장인정신과 퀄리티(품질)이란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좋은 술을 만드는 것은 오케스트라와 유사하다. 우선 오케스트라에는 연주를 위한 악보가 있다. 가령, 바흐의 샤콘느 악보에는 바흐의 혼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보면 제품(매실주)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기획, 레시피가 아니겠나 싶다. 또, 연주자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음악이 다르듯이, 어떤 원료를 쓰느냐에 따라 매실주 품질도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 또 , 오케스트라는 혼자 연주하는 게 아니듯이 매실주도 재료와 사람과 양조설비가 잘 어우러져야 좋은 제품이 생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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