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 적용된 분양가 상한제… 이 재건축은 어쩌나

조선일보
  • 정순우 기자
    입력 2019.08.13 03:07

    국토부, 서울·과천 등 31곳 대상
    심의위, 10월 이후 구체지역 확정… 전매 제한 최대 10년으로 늘려

    12일 오후 2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는 재건축을 위한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2003년부터 재건축을 진행해 온 이 아파트는 2017년 사실상 재건축 허가인 관리처분계획 인가까지 받은 뒤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 분양 4787가구, 3.3㎡(평)당 평균 분양가는 약 3200만원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올 상반기 분양보증을 발급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평당 2600만원 이상은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의 '고가(高價) 아파트값 잡기'에 편승한 것이다. 그러자 조합은 분양보증이 필요 없는 후(後)분양으로 규제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날 정부 발표로 또다시 패닉에 빠졌다. 서울 전역 아파트의 재건축이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이 되면서 이 아파트 역시 평당 2600만원도 못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조합은 당장 13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한 조합원은 "이미 아파트는 부숴버린 상황에서 분양을 중단하거나 턱없이 낮은 금액에 분양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5900가구 이미 철거중인데…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단지 재건축을 위한 철거 작업이 한창인 모습. 5930가구를 1만2000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둔촌주공은 2년 전 관리처분 인가를 받아 종전까지는 분양가 상한제 대상이 아니었지만,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개정으로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수익성 악화로 위기에 놓인 둔촌주공조합은 13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5900가구 이미 철거중인데… -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단지 재건축을 위한 철거 작업이 한창인 모습. 5930가구를 1만2000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둔촌주공은 2년 전 관리처분 인가를 받아 종전까지는 분양가 상한제 대상이 아니었지만,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개정으로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수익성 악화로 위기에 놓인 둔촌주공조합은 13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는 12일 당정협의를 거쳐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기준 개선 추진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이르면 10월부터 서울·과천·분당 등 전국 31곳에 달하는 투기과열지구의 민간택지에 건설될 아파트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은 당초 강남 등 일부 과열 지역을 겨냥한 '핀셋 규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25개 구 전체가 대상에 포함됐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단지에 대한 상한제 적용 시점도 기존에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한 단지부터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는 아파트까지 늦춰져 대상 범위가 확 넓어졌다.

    당장 래미안 라클래시(강남구), 둔촌주공(강동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서초구) 등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를 포함해 서울에서 관리처분 인가를 마치고 분양을 준비 중인 아파트 76개 단지, 7만2000여 가구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중장기적으로는 서울 아파트 167만 가구 중 3분의 1 이상인 지은 지 30년 이상 된 아파트들도 영향권에 들 것으로 보인다. 기존 상한제 적용 기준으로는 최근 4년간 대상 아파트가 하나도 없었던 것과 대비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덕훈 기자

    이번 개정안과 관련해 정부가 '집값 잡기'란 단기 목표에만 함몰돼 시장을 외면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정부의 과도한 재량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 중 '최근 3개월 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가 넘어야 한다'를 '투기과열지구'로 바꿨다.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어디에 적용할지는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거쳐 추후 결정하기로 했지만 모호성만 키웠다는 비판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대상을 명시하지 않고 광범위하게 정한 뒤 집값이 꿈틀대면 집중 규제에 나서는 '두더지 잡기' 방식을 택한 것"이라며 "개인의 재산권을 행사할 자유를 정부가 임의대로 막는 처사"라고 말했다.

    또 다른 비판은 위헌 논란이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시 주변 시세보다 20~30% 낮은 가격에 분양되는 '로또 아파트' 광풍을 우려해 현재 3~4년인 전매(轉賣) 제한기간을 최대 10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기간 중 집을 처분하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넘겨야 한다. 이때 매매가격은 시세보다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상한제 적용 시점을 '입주자 모집 승인 신청'으로 바꾸면서 재건축 대상 아파트 주민들은 상당한 재산 손실을 감수해야 할 판국이다. 예컨대 둔촌주공의 경우 이번 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 수익이 1조원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가구당 예상 손실은 약 1억원이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기존 정부 방침에 따라 철거 작업까지 시작한 주민들에게는 소급 적용을 한 것이 위헌적 발상인 동시에 날벼락 수준의 조변석개식 정책"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왜곡도 우려했다. 상한제로 재건축이 사실상 막히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정상적인 거래까지 막힌다는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서울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꾸준한 상황에서 분양가만 규제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며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 주택이 공급될 수 있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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