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자소서에 질린 취업준비생, 이제 기획안 쓴다

조선비즈
  • 조지원 기자
  • 서영일 인턴
    입력 2019.08.11 08:00 | 수정 2019.08.11 08:43

    물류회사 취업을 준비하는 박모(26)씨는 최근 자기소개서(자소서) 대신 쓴 기획서로 롯데글로벌로지스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 물류창고 개선방안에 대한 질문에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한 물류 데이터화 기획안을 제출한 것이다. 박씨는 "스펙 쌓기에 대한 부담이 적은 전형이라 지원했는데 평소 관심 있던 분야라 도움이 됐다"고 했다.

    박씨가 스펙을 쌓지 않고도 서류 전형에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롯데그룹이 진행 중인 ‘스펙(SPEC)태클’ 전형 덕분이다. 롯데그룹은 2015년부터 직무 수행 능력과 창의성을 보유한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자체 블라인드 채용 방식인 스펙태클 전형을 도입했다. 자기소개서 대신 기획안으로 서류 심사를 하면서 지원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획력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 관계자는 "지원자가 제출한 기획서 내용이 좋을 경우 브리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며 "브리핑으로 면접 전형을 대체하기 때문에 자소서 작성이나 필기시험 없이 채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롯데 스펙태클 광고영상 캡처. /롯데 제공
    최근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되면서 SK, 롯데, KT, 현대백화점 등 기업들이 다양한 전형을 내놓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지원자의 학벌, 성별, 출신을 알 수 없게 되면서 실무역량이나 직무적합성을 더욱 중시하는 것이다. 특히 실무역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획안 작성과 발표를 통해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SK그룹은 스펙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 바이킹 챌린지 전형을 도입했다. SK가 말하는 바이킹형 인재는 ‘끼와 열정을 바탕으로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다. 지원자는 본인이 왜 바이킹형 인재인지 설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로 서류심사를 받는다. 서류평가에서 통과되면 15분가량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을 거쳐 선발된다.

    KT는 스타오디션 전형을 통해 스펙 대신 역량과 경험을 보고 있다. 5분 동안 자유 형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본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방법은 무엇이든 쓸 수 있다. 오디션에서 통과할 경우 신입사원 서류 전형 합격 혜택을 부여한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워너비 패셔니스타(Wannabe PASSIONISTA)전형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지원자는 500자 내외로 자신이 채용되어야 하는 이유를 자유롭게 쓴 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파워포인트 발표자료를 제출하면 된다.

    블라인드 전형이 늘어나면서 자소서보다 기획안을 선호하는 취준생도 늘고 있다. 최근 취준생들은 ‘자소서포비아’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자소서 작성에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이다. 스펙이 상향평준화될수록 차별화된 자소서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공포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취준생들은 무의미한 스펙 쌓기에 시간을 보내기보다 평소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획안이 도움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취업준비생 조모(27)씨는 "지원 동기, 성취 경험 등 자소서 항목은 다 비슷한데 회사마다 어떤 내용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소서를 쓸 때마다 막막함을 느낀다"며 "자소서와 기획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기획안을 쓸 것"이라고 했다.

    문상기 경희대학교 미래인재센터 교수는 "대학에서 비교과 프로그램에 직무역량을 보완하는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는데, 학생들도 채용 트렌드 변화에 맞춰 역량과 경험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며 "올해 하반기 전형을 앞두고 다양한 현장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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