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앞으로는 성실함도 잽니다

조선일보
  • 이기훈 기자
    입력 2019.08.08 03:08 | 수정 2019.08.08 14:52

    통신요금 납부·온라인 평판 등 속속 등장하는 '대안 신용평가'

    새롭게 도입되는 신용평가 모형들
    새내기 직장인 이모(27)씨는 병원비로 쓸 급전이 필요해 은행 대출 창구를 찾았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학생 때 알뜰하게 살면서 빚을 진 적이 한 차례도 없고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만 쓴 게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여태껏 쌓인 금융 거래 정보가 없어 은행이 이씨 신용을 평가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은행권은 보통 급여 정보가 1년 이상 쌓이고 신용등급이 4등급 이상 나와야 돈을 빌려준다.

    다른 은행 문을 두드리던 이씨는 다행히 우리은행에서 필요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은행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다른 방법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이씨의 휴대전화 요금 납부 내역을 봤더니, 요금을 한 차례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낸 게 확인됐다. 신용등급은 낮지만 '통신 신용등급'은 높게 나온 것이다.

    이처럼 소득이나 재산, 과거 대출 상환 내역 등이 아닌 새로운 정보로 개인 신용을 평가하는 '대안(代案) 신용평가' 모형이 속속 나오고 있다. 가정주부나 학생, 새내기 직장인처럼 금융 거래 정보가 부족해 신용을 제대로 인정 못 받는 신파일러(Thin filer·금융 거래 정보 파일이 얇은 사람)에게 희소식이다. 금융 당국은 우리나라에서 신파일러가 13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융 정보 없는 '신파일러' 1300만명, 제대로 평가받는다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예비 교사 김모(24)씨는 발령 날짜를 기다리며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다. 당장 돈이 없어 학원비를 빌리려 했지만 은행에선 거절당했다. 그도 직장 생활을 아직 안 한 '신파일러'여서 신용등급이 6등급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대신 핀테크 업체 '크레파스 솔루션'에 손을 벌렸다. 이 회사는 자체 신용 평가를 통해 그를 'A등급'으로 평가해 돈을 빌려줬다.

    크레파스 솔루션은 금융 거래 실적이 아닌 개인의 '성실성'을 보고 돈을 빌려준다. 이 회사가 성실성을 평가하는 수단은 스마트폰 사용 기록이다. 예컨대 최근 문자 메시지 수신 대비 발신 비율을 보면 다른 사람과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받을 수 있다. 어떤 앱을 주로 쓰는지, 휴대전화를 자주 쓰는 시간대는 언제인지, 매일 아침 스마트폰 충전이 잘 돼 있는지 등으로 생활 패턴이 안정적인지도 따져볼 수 있다. 크레파스 솔루션은 이런 식으로 스마트폰에 숨은 1만2000여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개인 신용을 평가한다.

    핀테크 업체 '핀크'는 SKT의 통신 기록으로 신용을 평가하고 대출을 중개하는 서비스를 오는 10월 중 출시할 예정이다. 핀크는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약 1800만명이 기존 신용등급으로 대출받을 때보다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거나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고 했다.

    카드 매출 많고 온라인 리뷰 좋으면 높게 평가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 역시 이런 기술의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보통 자영업자는 직장인에 비해 소득 파악이 잘 안 되고 소득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낮게 평가를 받는다.

    신한카드는 카드 매출 정보와 상권·업종 정보 등으로 자영업자 신용을 평가하는 사업에 뛰어든다. 카드 매출이 꾸준한지, 최근 들어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 등을 보고 신용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게가 있는 곳이 뜨는 상권인지, 비슷한 가게 중에서 매출이 많은 편인지 등도 반영된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신용평가 결과가 신한지주 계열사에서 대출받는 데 쓰일 예정이며 외부 업체와도 제휴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대카드는 카드 매출 정보에 온라인 쇼핑몰 리뷰 등도 반영하는 모델을 개발 중이다. 예컨대 쿠팡·옥션 같은 오픈 마켓에서 고객 평점이 얼마나 후한지, 부정적인 댓글이 달렸는지 등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대출 중개까지 이어주는 플랫폼을 조만간 출시할 계획이다. 그 외에도 실시간 세무 회계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 신용을 평가하는 서비스(더존비즈온), 언론 보도·공공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기업 신용을 평가하는 서비스(지속가능발전소) 등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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