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04.6조인 예산, 내년 516조원으로 상향 전망
2023년 지출 600조 넘길듯…재정적자 만성화 우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일각에서 내년 재정을 올해보다 10% 넘게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한 자릿수 증가’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도 재정 지출 증가율을 올해 수준(9.7%)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금액 기준으로는 지출 증가폭이 커지기 때문에 충분히 확장적이라는 판단에서다.

6일 기획재정부 등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는 2020년 재정지출 증가율을 올해 수준인 전년 대비 9.7% 안팎으로 잡고, 관련 내용을 지난달 중순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8일 서울 소공동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국가재정운용계획 공개토론회’에서 정확한 전망치를 공개할 예정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재정 지출 증가율을 두 자릿수(10% 이상)로 잡고 지출 계획을 짜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내년 재정 지출이 올해 수준으로 늘어나면 내년도 예산은 516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기재부 전망치(504조1000억원)보다 11조5000억원가량 증가한다.

지난 5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 네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 이후 청와대와 민주당은 내년에 공격적인 재정 확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내년도 재정 지출 증가율을 올해 수준으로 관리하기로 한 것은 증가율을 유지하더라도 절대적인 증가폭은 작년보다 크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9.7%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재정지출 증가폭은 45조6000억원으로 올해(41조7000억원)보다 4조원가량 많다. 또 정부는 이미 2018~2019년 예산 편성 당시부터 각 부처가 늘어난 지출 목표만큼 재정 집행 사업을 늘릴 수 없어 애를 먹었었다. 무작정 지출만 늘릴 수 없는 형편인 셈이다.

부가가치세 중 지방소비세로 이관되는 몫도 올해 15%에서 내년에 21%로 6%P(포인트) 늘어나면서 사실상의 확장재정 효과가 발생한다. 작년 부가가치세수(70조원)를 기준으로 하면 내년에 약 4조7000억원이 중앙정부 세입에서 지방정부 세입으로 전환된다. 이로 인한 세수 증가효과는 1.0% 정도로, 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정부 지출 증가율은 11%에 육박한다.

2017년 이전과 다르게 물가상승률이 ‘제로’ 수준인 점도 재정 지출 증가율을 한 자릿수로 유지하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GDP디플레이터(명목GDP와 실질GDP의 차이로 경제 전체의 물가상승률을 의미)가 ‘제로’ 수준인 0.1%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작년 GDP디플레이터는 0.3%였다. GDP디플레이터가 연 1.8% 수준(2010~2017년 평균)이었던 이전보다 지출 증가의 효과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년 재정지출 증가율이 올해 수준으로 유지돼도 내년 이후로는 재정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2021~22년 재정지출 증가율이 기재부 전망치인 연 5.9~6.2%일 경우, 2022년 예산규모는 580조5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기재부가 예상하는 2022년 세입은 547조8000억원에 불과해 32조7000억원 규모의 재정적자가 예상된다. 올해 이후 매년 31조~41조원씩 지출이 늘어나면 2023년에는 재정 지출이 6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일각에서는 내년 재정 지출 증가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전 경제수석)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재정 지출 증가율이) 희망 사항으로는 두 자릿수까지 갔으면 좋겠다"라며 "한국은 독일, 호주 등과 더불어 재정 여력이 충분한 나라"라고 말했다. 또 여권의 경제 이데올로그 중 한 명인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장도 "향후 3년간 재정 지출을 해마다 50조원씩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