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중구 명동 중앙로 핵심 상권에 '휠라'가 지상 2층 규모 매장을 열었다. 2007년까지 운영했던 명동 직영점을 폐점한 뒤 12년 만에 재입성한 것이다. 휠라는 신발을 중심으로 의류와 액세서리도 판매한다. 노른자위 점포를 휠라에 내준 업체는 2013년부터 자리를 지켰던 색조 화장품 로드숍 'VDL'이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명동 중앙로에 '휠라'(왼쪽) 매장이 문을 열고 신발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화장품 로드숍이 있던 자리다. 한 건물 건너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매장이 보인다. 업계에선 "화장품이 먹여 살리던 서울 핵심 상권을 신발이 접수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휠라 매장 인근에서도 비슷한 업종 전환이 일어났다. 화장품 업체 '네이처리퍼블릭'이 5년여 영업 끝에 올 초 간판을 내리자, 지난 3월 신발 편집 매장 '에스마켓'이 문을 열었다. 지난 2월에는 인근 명동길에서 또 다른 에스마켓 점포가 화장품 브랜드 '바닐라코'가 있던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이 같은 현상은 명동뿐만 아니라 홍대, 강남역 등 서울 주요 상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K뷰티 열풍을 타고 급속히 늘어난 화장품 매장들이 최근 외국인 관광객 감소와 온라인 쇼핑몰 증가의 직격탄을 맞고 매출 부진과 출혈 경쟁에 시달리다 속속 폐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신발 편집숍과 스포츠 브랜드 매장들이 최근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른 운동화 인기를 타고 매장 확대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발 편집숍이 점령한 명동 핵심 상권

28일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서비스 업체 '쿠시먼앤웨이크필드'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2분기에 명동 중앙로에 있던 화장품 매장 81곳이 올 1분기에 76곳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강남대로에서는 20곳(1층 기준)에서 13곳으로 감소했다. 반면, 최근 신발 매장은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올 1분기 기준 명동, 홍대의 중심 상권 신발 매장(스포츠 브랜드 포함)은 각각 22곳, 27곳이었다. 실제로 명동8길과 10길 사이 60여m 골목길에는 상가 12곳 가운데 5곳의 1층에 폴더, 스케쳐스, 아트모스 등 신발 가게가 있다〈지도 참조〉.

ABC마트는 올 상반기 홍대에서만 매장 2곳을 새로 냈고, 명동에서도 신규 점포 1곳을 추가했다. ABC마트는 현재 홍대와 명동 상권에서 각각 5개, 4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영국 신발·의류 편집숍 'JD스포츠'는 지난해 4월 한국에 진출하며 강남대로와 홍대, 명동에 점포를 잇따라 냈다.

업계에서는 "화장품이 먹여 살리던 서울 핵심 상권을 신발이 접수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이날 오후 명동 중심 거리에서 살펴본 대형 신발 편집 매장들은 가족 단위 중국인 관광객과 젊은이 수십 명으로 북적였다. 반면, 주변 화장품 매장 상당수는 손님이 2~3명에 그치거나, 아예 한 명도 없었다.

◇패션 아이템으로 부상한 '운동화'… 업체들, 공격적 매장 확장

전문가들은 최근 운동화를 대표 주자로 신발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매장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2012년 2조4490억원이던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는 지난해 3조5000억원대로 40% 넘게 증가했다. 전체 신발 시장에서 운동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53%(2017년 기준)로 절반을 넘어섰다. 특히 최근에는 투박하게 생긴 신발을 뜻하는 '어글리 슈즈'가 10·20대 사이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캐주얼 복장 근무제가 확산되고,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라 직장인들의 레포츠용 기능성 신발 수요도 늘었다.

특히 온라인 쇼핑 확산에도 신발의 오프라인 매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이즈나 착화감을 확인하기 위해 구입하기 전 직접 신어봐야 하는 신발 자체의 특수성에 기인했다는 분석도 있다. 진원창 쿠시먼앤웨이크필드 리서치팀장은 "최근 유통업계 오프라인 매장들은 온라인 쇼핑에 맞서기 위해 체험을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주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에게 고르는 재미와 신어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신발은 체험형 상품의 대표 주자"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발 유통 업체와 스포츠 매장들이 주요 상권에서 점포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대형화에도 앞다퉈 나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