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 ⑤전국 최대 전통주점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 “전통술의 박물관 역할하고 싶어요"

조선비즈
  • 박순욱 기자
    입력 2019.07.26 14:30 | 수정 2019.07.26 15:31

    전국 최대 규모 300종 전통술 갖춘 점포 두곳 운영
    ‘막걸리와 재즈의 만남’ 공연이벤트도 매월 열어
    "하반기 도매유통사업 진출로 영세 양조장 판로 뚫는다"


    정말 북극 백곰 같이 생겼다. 상의도 가급적 흰 옷만 입는다. 본인 스스로가 백곰이라는 별명을 즐기는 듯 하다. 실례일 것 같아 체중을 묻지 않았지만 몸무게도 꽤 나가는 것은 틀림없다. 거의 매일 밤마다 전통주점을 돌며 술과 음식, 친구, 얘기, 이 네가지를 즐기니 몸이 불어나지 않았다면 그게 거짓말이다. 그의 ‘전통주점 순례’는 자신의 주점 영업이 끝나는 시간인 밤 12시쯤 시작돼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점심 시간 ‘출전’도 드물지 않다. 전통주업계 최고의 마당발,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 이야기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가 명동점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순한 백곰을 빼닮았다. /박순욱 기자
    2016년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문을 연 전통주전문점 ‘백곰막걸리'는 술맛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 ‘전통주 성지'로 통한다. 새하얀 양옥집에 들어서면 백곰을 빼닮은 이승훈 대표가 손님을 맞는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전통주는 300종 남짓 된다. 개점 초기 120종에서 시작했는데, 3년만에 두배 이상 늘었다. 전국 100여 곳의 전통주 주점 중 압도적 1위다. 2년 전에는 그가 밤마다 찾아다닌 술집 위주로 ‘전통주전문점협의회’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작년에 2호점인 백곰막걸리 명동점을 열었고, 올해부턴 명동점 지하에서 우리술과 재즈의 만남이란 이벤트도 매달 열고 있다. 막걸리와 재즈는 무슨 상관성이 있을까? 이승훈 대표를 만나 전통주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정부로부터 ‘전통주 민간 홍보대사’란 직함을 받지는 않았지만 ‘전통주 알리기’에 그만큼 몸과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을 필자는 알지 못한다.

    ◇전통술은 남아도는 쌀 소비에 크게 기여… 막걸리 한병, 밥 한그릇 쌀 분량

    백곰막걸리에서만 취급하는 술 3종류만 소개해달라.

    "다른 전통주 전문점에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술을 3개만 꼽는다면 가평 ‘청진주’, 서울 ‘나루생막걸리’, 장성 ‘장성만리' 이렇게 3개를 들고 싶다. 가평 ‘청진주’는 가평의 전통주연구개발원 이상균 원장이 만든 술이다. 이 원장이 교육기관을 운영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술빚기 교육 차원에서 만든 술이다. 상업적으로 만드는 술이 아니라서 한달에 딱 200병만 만든다.

    서울 ‘나루생막걸리’는 출시된 지 한달도 안됐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젊은층 사이에서 핫한 서울 성수동에 양조장을 만들어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의 제자 네명이 막걸리를 빚고 있다. 특이한 점은 서울에서 난 쌀로 술을 만든다는 점이다. 서울 강서구의 ‘경복궁쌀’이 원료다. ‘서울의 쌀로, 서울에서 빚는 막걸리’라는 점에서 아주 드문 제품이다. 무감미료 제품으로 세번 담근 삼양주다.

    장성 ‘장성만리'는 전남 장성의 해월도가(대표 임해월)에서 만든 약주로서, 도매가가 2만원이 넘는 꽤 비싼 술이다. 임해월 대표는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 제자인데, 연화주 기법으로 만든 술이다. 보통 약주는 3개월 정도 숙성하면 고급술 취급을 받는데, 이 술은 연꽃을 넣어서 6개월 이상 숙성시킬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우리 업장에서 4만4000원에 팔고 있는데, 이 가격대는 사실 다른 전통주점에서 취급하기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장수막걸리, 지평생막걸리 같은 대중적인 술은 취급 안하는 이유는 뭔가?

    "나는 장수막걸리나 지평막거리에 대해 ‘안티파’가 아니다. 다만, 백곰막걸리 주점은 다양한 전통주들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우리까지 이런 술들을 취급하면 전체 판매 술의 30% 정도는 이 두가지 술이 차지해버릴 것이다. 이 두 술을 취급하려면 다른 술 30~40 종 정도는 판매 리스트에서 빠질 수밖에 없다. 술의 다양성을 유지한다는 측면과 다른 곳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술을 굳이 우리 매장에서 취급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 팔지 않고 있다."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 한복판에 있는 백곰막걸리 신사본점의 야경. /백곰막걸리 제공
    국내 쌀 막걸리와 수입 쌀 막걸리는 맛에서 차이가 있나?

    "맛에서는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보면 양조 전문가들도 맞추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원산지로만 술의 품질을 따질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전통주는 우리 농산물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전통주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전통주에서 원산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 백곰막걸리에서는 수입 쌀로 만든 술은 취급을 하지 않는데, 예외적으로 알밤막걸리 한종류만 수입쌀 제품이다."

    전통주가 쌀 소비에 어느정도 기여하나?

    "2010년도에 전통주 업계에 처음 들어왔는데, 그 때가 풍년이 들어 쌀이 남아돌고 있고, 막걸리 붐이 막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정부가 쌀 소비를 늘리려고 애쓰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개발독재 시절도 아니고, 요즘 정부가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밥 한 공기 더 먹읍시다’ 이런 캠페인을 한다고 해서 쌀 소비가 늘어나는 시대가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쌀 소비 활성화 측면에서 정부가 ‘막걸리 띄우기’를 한 것이다. 일반 막걸리 한병에 들어가는 쌀이 대략 밥 한공기 정도인데, 결국 막걸리 한병을 마신다는 것은 밥 한공기 정도의 쌀을 먹는 셈이기 때문에 쌀 소비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전체 막걸리 판매량을 보면 엄청난 쌀 소비가 아닐 수 없다."

    ◇무감미료 제품 바람직하지만 가격 비싼 건 소비자에게 부담

    쓴 맛을 줄이기 위해 아스파탐, 스테비오 같은 감미료를 쓰는 전통술 업체들이 여전히 많다.

    "백곰막걸리 주점은 인공적인 감미료를 넣지 않은 술들을 선호한다. 하지만 95% 이상의 양조장이 각종 첨가물을 넣은 제품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감미료를 넣은 술을 외면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특히 막걸리는 아스파탐을 비롯해 첨가물이 들어간 제품이 많은데, 나는 이런 제품들도 무조건 배척할 것은 아니라는 ‘중도파’에 속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 제품들이 대세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

    양조장들이 감미료를 넣는 이유 중 하나가 생산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쌀을 조금이라도 덜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쌀을 덜 쓰는 대신 쌀 성분이 가진 단맛을 감미료를 넣어 보충하는 것이다. 결국 생산원가를 낮추려고 쌀은 줄이고 감미료는 늘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쌀 함유량만 늘리면 감미료는 넣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싶지만, 이 문제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에 연동돼 있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감미료 막걸리’의 대명사인 장수막걸리 같은 술은 어느 업소에서나 4000원 정도면 마실 수 있지만, 백곰에서 파는 무감미료 프리미엄 막걸리는 병당 1만원이 훌쩍 넘는다. 생산원가 측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무감미료 제품을 고집할수록 막걸리에 대한 접근성은 떨어진다(가격저항력이 커진다)는 얘기다.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은 게 좋다는 면에서 첨가물이 들어간 저가 제품, 무감미료로 만든 고급제품들이 병존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막걸리와 재즈는 ‘아싸’라는 공통점...막걸리 마시는 재즈공연 매달 연다

    백곰막걸리 신사본점 지하에는 양조장 설비를 갖추고 있는데, 술을 빚지 않는 이유는?

    "백곰막걸리에서 직접 하우스막걸리를 만들어 팔면, 손님이 우선적으로 이 술을 맛보려 하지 않겠나? 상업적으로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술을 판다는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 내가 내 술을 팔면, 다른 술을 소개하는데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십 종류는 판매 리스트에서 빼야 할지 모른다. 백곰은 내 술을 팔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술을 발굴해서 알리는데 주력하는데 더 맞다는 판단이다.
    백곰은 잘 팔리는 한두 개 술에 집중하기보다는 백과사전, 박물관 처럼 다양한 술을 널리 소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어 양조장은 가동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몇개월 전만 해도 양조장 면허를 아예 반납할 생각이었는데, 직원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어렵게 양조장 면허를 받아놓고 왜 반납을 하려 하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백곰은 전통주점이나 양조장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미 전통주점이나 양조장을 차려 독립한 직원도 두세 명 된다. 때문에 본점 지하의 양조장을 직원들이 창업에 나서기 전에 술을 빚는 경험을 쌓는 교육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소량 한정판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직원 인큐베이팅 차원에서 이용할 셈이다."

    백곰막걸리 명동점에서 매월 열리는 우리술과 재즈의 만남 공연. /백곰막걸리
    우리술 재즈 프로젝트는 어떤 취지에서 시작했나?

    "매월 열고 있는데 이번 달이 4회째다. 술과 스토리가 있는 재즈 공연이다. 앞서 우연히 재즈와 관련된 분들이랑 얘기를 하다 보니까 재즈와 막걸리가 유사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음악에 있어 재즈는 ‘마이너(소수)’이지만, 매니아층, 골수팬들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막걸리 역시 전체 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강력한 옹호층을 갖고 있다. 둘다 ‘아싸(아웃사이더)'라는 ‘동병상련’ 사이라고 할까. 서로 이질적인 것 같으면서도, 음악과 술은 어울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달 재즈 행사(7월 27일)에는 우선 술로 경남 남해의 ‘다랭이팜막걸리’를 정했는데, 이 술에 어울리는 아티스트로 ‘재즈계의 디바’로 유명한 가수 카르멘 맥래를 정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는 재즈 보컬을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이 행사에 오는 관객들은 이 술을 마시면서 공연을 즐기게 된다. 물론 양조장, 아티스트에 대한 얘기도 들려준다. 반응은 좋은 편이다."

    ◇판매 순위 리스트 공개...소비자는 물론 전통주점 예비창업자에게도 좋은 정보

    이승훈 대표는 2년 전 전국 ‘전통주전문점협의회'를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이 단체가 하는 일 중 하나가 한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막걸리, 약주, 증류주 3개 부문 순위를 발표하는 것이다. 전통술을 아직 잘 알지 모르거나, ‘남들이 많이 마시는 술이 궁금한' 사람들에겐 좋은 가이드가 되고 있다. 협의회 소속 30여개 전통주점에서 팔린 제품을 기준으로 했다.


    2018년 한해 막걸리 중 가장 많이 팔린 술은 전남 해창주조의 ‘해창막걸리'였다. 1등급 해남쌀과 직접 빚은 누룩, 일체의 감미료 없이 만든 프리미엄 막걸리다. 찹쌀과 멥쌀이 어우러져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약주(청주) 부문에서는 청주 화양양조장의 ‘풍정사계 춘'이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상큼한 사과향, 꽃향이 봄의 향취를 자아낸다. 증류주 부문에서는 전주 ‘이강주'가 1위를 거머졌다. 쌀을 증류한 소주에 배와 생강이 들어간다고 해서 이강주로 이름붙인 조선시대 명주다.

    인기 판매 술 리스트 공개를 하게 된 취지는?

    "3년전 백곰을 열 때부터 매월 판매 순위 리스트를 공개해왔다. 소비자들은 물론 전통주점이나 도매상들에게도 좋은 정보다. 전통주점을 창업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술을 취급해야 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하겠나? 술 판매에 관한 정부나 관련 단체 차원의 자료가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주 전문 도매유통사업 새로 시작...영세 양조장 판매 돕겠다

    계획하고 있는 신규사업은?

    "전통주 도매유통 사업을 올 하반기에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현재 백곰막걸리 지점 두 곳을 운영하고 있고, 취급하는 술이 300종 가까이 되지만 일년에 우리가 팔 수 있는 전통술은 매우 적다. 취급 술이 많다 보니, 술 하나하나 판매량은 많을 수가 없다. 우리같은 전통주점은 양조장 입장에서 술 홍보는 해줄 수 있지만, 양조장을 먹여살릴 정도로 술을 많이 팔기는 어렵다. 술을 많이 팔려고 한다면 프랜차이즈 사업화해서 백곰 매장을 전국에 수백개 운영하면 될테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도 않고 기존 전통주 전문점의 밥그릇을 뺏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래서 매장을 늘리지 않고서도 전국의 양조장 술을 많이 팔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다가, 주점 확대 운영보다는 도매유통사업을 해야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그래서 전통주 위주의 제품을 취급하는 ‘특정주류도매’ 사업을 하반기에 시작한다. 특정주류도매는 면허 따기가 쉽지만, 지금까지 활성화되지 못한 까닭은 전통주 시장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백곰막걸리라는 주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도매를 하다가 재고가 쌓이더라도 이를 소화할 수가 있다. 기존 도매상들은 재고처리가 가장 큰 리스크인데, 우리는 200평 되는 대형 점포를 두개 갖고 있기 때문에 재고처리에 문제가 없다. 앞으로 백곰막걸리는 대형 도매상들이 취급하기 꺼리는 프리미엄 탁-약주 제품 위주로 유통사업을 할 방침이다.

    거래처인 소매점이나 전통주점에게도 지금과는 다른 전략을 쓸 것이다. 그동안은 이들이 박스 단위로만 제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병 단위, 소량으로도 납품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소규모 전통주점이나 소매점들이 재고 부담없이 원하는 만큼의 제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럴 경우 전국의 전통주 전문점들이 획기적으로 술 리스트를 늘릴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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